유고 사라예보 태생. 고란의 이름이 서구 영화음악계에 알려지게 된 것은 이자벨아자니 주연의 [여왕 마고] 때부터였다. 고란의 출세작인 된 [여왕 마고]는 유명한 극작가인 다니엘톰슨의 원작을 프랑스 문호인 알렉산드로 듀마가 각색해서 선보인 작품이다.
어려서부터 바이올린 교습을 받으면서 음악과 인연을 맺게 된 고란은 16세부터는 록밴드인 '화이트버튼'을 결성해 주로 정치권을 풍자하는 노래로 젊은층의 성원을 받는다. 그러나 그룹 활동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음악적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솔로로 독립해 홀로서기를 시도한다.
고란은 음악활동을 하다 교분을 맺은 에밀쿠스트리차 감독의 [방랑자의 노래]의 테마음악을 만들면서 80년대말부터 영화음악계에 투신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유고의 전통악기와 발칸반도의 민속음악을 적절히 활용했는데 이러한 다소 생소한 비주류 음악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유럽음악계에서 단번에 시선을 받는다.
한창 음악적 능력을 발휘할 즈음 조국 유고가 내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이자 어쩔 수 없이 파리로 이주하게 된다. 거기서 그는 에밀쿠스트리차 감독과 다시 손잡고 [아리조나 드림]의 음악을 담당한다. 이 영화에서 고란은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발칸반도의 토속적인 음악과 서구적인 록음악의 결합을 시도한다. 또한 펑크계의 전설적인 그룹 '이기팝'을 초빙해 상업적인 사운드트랙이 되도록 했다.
그리하여 이들은 이탈리아의 펠리니 감독과 니노로타 콤비처럼 절묘한 팀웍을 이루어나간다. 이런 과정에서 고란은 자신의 출세작중의 하나인 [여왕 마고]의 테마음악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16세기 실존인물을 영화로 선보인 이 작품에서 고란은 프랑스의 궁정음악과 당시 정치권의 실세인 가톨릭 종교음악을 곳곳에 삽입해 품위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조국을 잃어버린 그의 과거탓일까? 고란그레고빅의 음악을 설명할때면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 '월드뮤직'이라는 단어를 거의 습관적으로 인용하게된다.
분명 그의 음악이 월드뮤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잦은 불화와 내전으로 이념과 정신 모두가 산산히 찢겨버린 조국의 그늘은 그를 머무르지않고 떠돌아 다니게 운명지어준 것 같다.
그래서인지 고란그레고빅의 음악은 그 골깊은 내적심성속에서도 늘 스산한 정서를 간직하고 있으며 또 하나 이상한 우연은 [집시의 시간]을 비롯, [아리조나 드림] [언더그라운드]로 이어지는 에밀쿠스트리차와의 일련의 공동작품들속에서 발견되는 정서 - 늘 제자리를 찾지못하고 떠도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에 한축을 담당하는 그의 존재이다.
감독의 예리한 시선과 늘 상상을 뛰어넘는 풍자속에 고란그레고빅의 음악은 관조하듯이 떠돌다가 어느순간이 되면 늘 제자리를 찾아주는 구심점의 역할을 해왔으며, 평론가들과 팬들이 그의 영화음악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천재적이든 노력형이든, 재능을 널리 인정받는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그는 단순히 음악만을 작곡하고 연주하는 뮤지션이 아니라 자신의 태생적 환경과 지나온 과거를 영화라는 매체에 절묘하게 맞물리게 하는 능력이 있다. 물론 여기에는 자신의 음악적재능이, 사람으로 치면 '언어'의 역할을 하는데 쓸데없는 말 한마디보다 침묵이 긍정적이듯 고란그레고빅은 음악으로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게 표현하고 감독의 의도를 관철시키는 중심자적 역할을 한다.
지금은 또 다시 떠돌고 있지만 언젠가 반드시 돌아올 영화음악가중 하나인 고란그레고빅.
공백이 길수록 기다려지고 그 공백마저도 뭔가 '이유있게' 만드니 그의 팬들이나, 필자나 떠나보내고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는 - 어쩔수 없는 처지인것 같다.
<사족>
우리게에는 알려진 영화음악가이지만 '10대들의 우상으로 존재할 것만 같은' 록밴드의 운명이 지겨워 록음악을 내팽개치고 영화에 투신했다는 그의 말은 이러한 과거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늘 떠돌다가도 언제 그랬냐는듯이 원래의 자리로 회귀하기도 하는데, 그는 지금 록밴드 '노 스모킹 밴드'에서 활동하고 있으며(이 밴드의 이름으로 나온 사운드트랙이 바로 [검은고양이 흰고양이]이다) 자신의 과거따위는 잊어버린 듯 태연하게 전기기타를 튕기며 하고싶은 음악세계에 몰두하고 있다.
- Writer 김관희, 이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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