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 그리고 OST-BOX

글: 주성제

몇달 전까지 나는 각 통신의 애니메이션 동호회를 매일마다 들락거렸다.
그 이유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 문화에 대해서는 굉장히 후한 우리나라의 여건상 미국의 애니메이션 음악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반면에 일본을 비롯한 여러나라의 애니메이션 음악을 구할 방법이 그리 많지 않았던 나로서는 몇 달 동안 무척이나 행복했다.
그러나 동호회들을 이곳 저곳 다니며 아쉬운 점 또한 없지 않았다.
애니메이션 동호회 자료실 내의 애니메이션 음악들의 용어(이른바 BGM 이라고 불리우는) 자체가 필자에게 있어서는 오류라고 생각되어졌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BGM이란 'Background Music'의 약자로 우리나라 말로는 '배경 음악'이라 불리는 용어로, 사실 이 용어는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DJ가 영화의 테마음악들을 지칭할 때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용어의 사용은 우리가 종종 아무런 의문 없이 영화를 보면서 음악이 표현하는 이미지를 의식하지조차 않은 채 영화음악을 받아들이고 있기에 가능한 오류가 아닐까 생각된다. 즉 마치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기 위해 받쳐주는 도구일 뿐인 'Background 음악'처럼 말이다.
러시아의 영화 시인이라 불리우는 명감독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는 그의 저서 '봉인된 시간'에서 영화음악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내 작품에서 음악은 단지 일차원적인 그림 설명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기를 바라고 싶다. 그리고 또한 어떤 경우에도 관객들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해 주는 극적 묘사의 감정적 외피로 음악이 작용하는 것을 나는 바라지 않는다. 영화음악이란 내게 있어서 어떤 경우에도 소리를 지니고 있는 이 세계의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모습일 뿐이며, 인간적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다.'
타르콥스키는 그의 저서에서 영화음악은 화면 위에 시각적으로 나타나는 표현들을 더 쉽게, 더 어렵게, 더 선명하게, 때로는 더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능적 역할, 즉 시각영상의 정서적 경험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영화 [Once Upon A Time In America]에서 어린 시절 데보라가 창고 안에서 발레를 추는 장면을 기억해보자. 조그마한 틈새로 엿보는 주인공 소년의 모습 사이로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여자 허밍의 테마음악이 흐르면 관객들은 아련한 여자 허밍의 음율 사이로 마치 옛 첫사랑을 떠올리게 되는 정서적 동기가 생기게 된다.
이 뿐만이 아니라 타르콥스키는 그의 영화 속에서 음악은 마치 서정시의 후렴구처럼 작용하게 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 말은 영상적 수단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정서를 표현하고 암시하는 영화음악의 기능을 표현한 말이다.
그는 한 편의 시를 읽으면서 서정적 후렴구를 대하게 되면 독자는 앞서 읽은 시의 내용에 힘입어 시인이 처음 시구를 적으면서 사로잡혔던 그 영감의 세계로 들어가는 새로운 경험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모든 영화들이 시 같은 영상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포착하신 분들은 쉽게 이해가시리라 생각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스트레인지러브 박사]에서 첫 장면을 생각해보자.
영화는 공중에서 연료를 보급하는 비행기 한대와 보급받는 또 한대의 모습을 비추면서 잘 알려진 연가인 '좀더 부드럽게 다루어주세요'가 흐른다. 만약 관객이 이 곡의 제목과 노래를 잘 알고 있었다면 마치 두 마리의 큰 새가 고상하게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즉 영상 외적으로 표현의 한도가 넓어짐과 그 다양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장면은 도입부였으므로 음악은 또한 영화 전체를 관류하는 풍자적 톤을 설정하는데도 공헌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음악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에 직접적이고 의미심장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면에서, 앞서 말한 이른바 배경음악(Background Music)이란 용어는 오칭인 셈이다.
그러나 굳이 배경음악이란 말을 영화음악에 쓰고 싶다면 옛날 무성 영화 시절 피아노 연주자가 화면에 나타나는 그때그때의 감정적 긴장감과 리듬에 걸맞는 음악적 반주을 했던 그 시절, 그 때의 음악을 지칭할 때나 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의 그 반주는 영상을 음악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보충하고자 하는 말 그대로의 'Background'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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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4box@hanmail.net) boxworld
OST-BOX/BOX 컬럼 l 2008/07/23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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