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시성
언젠가부터 영화음악, 그것도 사운드트랙을 찾는 사람들의 동기는 무엇인지, 영화음악에서 무엇을 듣고자 하는지, 무엇을 즐기는지 내심 궁금했다.
길 가는 100인에게 물어보아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국에서 표본을 임의 추출하고 설문조사를 시행하여 분석해 볼 수도 없지 않은가. 결국은 영화와 음악을 즐기는 행위에 대한 항간에 나도는 몇 가지 의견들을 근거로 추정해 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첫째 동기는, 영화가 너무 좋았다, 그때 흐른 음악, 흐른 노래가 좋았다, 그래서 다시 듣고 싶다는 것 아닐까. 영화의 풍부한 정서를 즐길 수도 있고, 언젠가 보았던 추억의 영화, 기억에 남는 과거의 그 음악에 대한 향수일 수도 있다. 어떤 면에서는 영화의 작품성이나 음악의 완성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만큼 주관적이지만 듣는 이에겐 매우 소중한 경험이다.
그러나 가끔씩 이유없이 단 하나의 '최고'만을 선택하려 하거나, 어떤 곡이 무조건 좋았다는 지나치게 강한 주장을 만나면 선뜻 뒤로 한걸음 물러서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의 음악은 영화와 혼재하면서도 영화와 구별된다. 한 장의 스틸이나 영화 포스터가 때로 영화의 이미지를 관객에게 더 강하게 각인 시키는 것처럼, 영화의 음악도 영화에 대한 환상 또는 영화의 환상을 유지시키는 강한 원동력이 된다. 개인의 환상은 자신을 위한 것이거나 그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남의 환상이 내 것이 될 수 없듯 모든 영화음악이 모두에게 만족스러울 수는 없는 법.
다양한 영화음악의 풍부한 원천들 속에서 나만의 고유한 즐김을 찾는다면 더 이상 부족함이 없을 게다.
영화음악을 찾는 두번째 이유로 '수집'을 꼽을 수 있겠다.
사실 수집가들에겐, 비록 영화와 그 음악이 다소 흥미가 있다 하더라도, 그보다 더 중요한 요소는 출시된 음반 그 자체이며, 때로는 그 음반이 얼마나 희귀한 것인가에 많은 관심이 있다. 그런 수집가들은, 비록 영화음악을 즐길 수도 있겠지만, 소수의 소장가로서의 지위를 즐길 가능성도 높다.
'누가 얼마나 더 많은 음반을, 누가 어떤 희귀 음반을 가지고 있나' 또는 '누가 사운드트랙에 대해 얼마나 더 많이 알고 있나' 같은 기준에 따라 '누가 더 고수인가'를 평가하려는 경향이나 소위 'Best 20'이니 하면서 사운드트랙에 서열을 매기는 행위와도 많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를 '권력지향적'이라고 부르면 무리일까. 무엇이 됐든 이는 영화음악을 아끼고 즐기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소유는 즐기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 소유가 목적이 되는 순간 즐거움은 달아나버리기 때문이다. 이제 '음악에서 얻는 즐거움'은 음악을 '소유하려는 욕망'으로 대체된다. 소유하려는 욕망은 만족되지 않는 법. 따라서, 결코 찾을 수 없는 행복을 찾아 소유에서 소유로 끝없이 헤매게 될 수도 있다. 이 같은 반복이 그의 목적일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영화음악 사운드트랙, 특히 스코어 음반은 다른 대중음악 앨범에 비해 찾는 층이 두텁지 않고 음반 시장이 넓지 못해, 음반을 구해 듣기가 용이하지 않을 때도 많다는 사실은 인정하자. 이는 영화음악 애호가들이 어쩔 수 없이 수집가의 위치를 일부 취할 수 밖에 없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반대로 최근 들어서는 음반의 소유를 대신해서 음악파일의 소유나 무차별적 확산을 목적으로 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영화음악의 파일을 구해 CD-Rom이든 mp3이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만들어 보존하고, 때로 출시된 정품음반의 표지그림 파일을 구할 경우 멋있게 자신의 CD-Rom 표지에 복제, 장식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음악파일과 표지아트를 '공짜'로 구한다면 금상첨화… 소유욕의 현대적 버전일까 아니면 음악가의 노력을 무화 시키려는 것일까. 영화음악을 즐기려 하기 보다는 어쩌면 모든 지식과 그 산물이 창제되는 가치를 파괴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달리 말하면 자신의 무력함을 표현하는 유일한 수단일지도 모른다.
근본적으로 영화음악을 아끼는 애호가들의 태도라고 볼 수 없는 만큼, 이는 영화음악을 찾는 이유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아예 배제함이 옳을 듯 하다.
그러나 이미 절판된 음반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복제가 불가피하다면 도리가 없는 것 아닐까. 재발매를 기다리거나, 요청하거나, 아니면 직접 공식적으로 발매에 나설 때 까지 한시적으로만 말이다.
무분별한 복제를 통한 확산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만이 즐기기 위함이라는 전제 하에서.
영화와 음악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 역시 영화음악을 즐기는 하나의 동기일 것 같다.
영화 분석과 비평의 일부로서 영화음악에 대한 견해를 표명하는 것이라고 할까. 영화의 작품성과 함께 음악의 완성도에 대해 보이게 되는 미학적, 비평적 반응이기도 하다. 영화음악에 대한 음악적 비평은 물론, 영화와 감독, 영화음악 작곡가와 그의 작업에 대한 탐구, 잊혀진 옛 영화음악의 재경험과 재해석을 위한 발굴과 복원의 과정, 영화와 음악의 상호소통, 함께 작업해 온 감독과 작곡가의 작업에 대한 비평 까지도 포함시킬 수 있을 듯 하다. 감성적인 즐거움이나 소유의 기쁨 못지않게 또 다른 재미인 지적인 즐김을 제공해 준다.
이런 논리적인 즐김을 위한 기본 원칙은 의견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다른 의견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일진대 무슨 이유에선지 이런 즐김은 쉽지않아 보인다. 토론이 아닌 말싸움 또는 비판을 위한 비판, '니들이 XX를 알아?' 식의 유아적인 질투심, 지적인 작업은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反-지식 운동' 같은 것이 판을 치면 그렇게 되기 십상이다. 비판이라기보다는 비방에 가까운 이 비난은, 사실은 부지불식간에 남의 즐김에 기댄 의존적인 쾌락일 뿐이다.
'넌 모르지? 나는 알아', '네가 그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할거야' 같은. 이런 반응은 여러 차례 소모적인 순환만을 거듭하다가 소모를 넘어 고갈되고 나면 결국 논리의 즐거움을 소멸시키고 만다. 이어서, 기댈만한 즐김의 대상을 스스로 파괴시켜버린 만큼 자신의 즐거움도 곧 소실되어 버린다.
최근 우연히 Soundtrack Collector 웹 사이트의 Forum에서 "왜 사람들이 film score를 구입하는가?"라는 질문과 하나의 흥미로운 답변을 발견하였다.
"영화음악은 음악의 어떤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다. 가장 큰 장점은 작곡가로 하여금 자기 마음대로 음악을 표현할 자유를 준다는데 있다. 영화와 음악이 반드시 연계될 필요도 없다. 나는 내가 가진 score가 사용된 영화 대부분을 본 적이 없다."
영화음악의 풍부함을 드러내는 다른 단면이다. 그만큼 다시 우리에게 물어 볼 수 있다.
우리가 영화음악에서 즐기는 것은 무엇이며, 즐기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