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 그리고 OST-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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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T.가 뭐예요?'
O.S.T.가 뭐냐구? 영화음악 관련일을 하는 필자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중 하나이지만 이 당돌한 질문은 명확한 의미나 그 뜻을 딴지걸 듯이 묻는 시비조의 그것은 아닌 것 같다.
'O.S.T.라는건 보통 영화에 쓰인 음악이나 음향을 통 털어 말하는 거예요'라고 대답하기는 쉽지만 아마도 여기에는 습관적으로 되뇌이는 이 줄임말의 진짜 뜻을 알고 싶거나, 좀 더 명확하게 그 의미를 파악하려는 진의가 숨어있으리라. 사실 이런 소소한 물음조차도 때에 따라서는 단순 감상자와 매니아를 규정짓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물음에 대한 명쾌한 답변과정을 거치게 된다면 우리가 본의아니게 구분했던 모호한 종이한장의 차이는 사라지고 비로소 대중성을 확보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영화를 예술이 아닌 자본의 공식으로 풀어나간 헐리우드 시스템에서 볼 수 있는 사운드트랙 앨범의 상업적인 매리트라면 모를까, 한국의 척박한 영화시스템에서는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었다. 영세적인 음반시장 규모와 체계적이지 못한 배급망에서 사운드트랙 앨범은 돈 좀 써서 만든 영화들이나 누릴 수 있는 부가적인 영예일 뿐이었다.
오늘 살펴보는 한국의 영화음악가(영화음악가라는 표현보다는 '영화음악人'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듯)는 앞서 언급했던 O.S.T.라는 의미를 대중 속으로 보다 깊게 각인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인물, 조영욱님이다.

조영욱님의 정확한 위치는 뮤직 슈퍼바이저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한국에서 이 호칭이 익숙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영화라는 열린 매체의 특성은 까탈스러운 관객의 입맛을 시각만이 아닌, 청각까지 동원하여 만족을 꾀한다는 대명제를 항상 전제로 하고 있으나 불행하게도 영화와 음악은 가슴으로 느낄만한 성취감을 주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조영욱님은 피드백 없이 단방향으로만 뻗어가던 대중과의 엇갈린 소통 - '영화속의 음악'이라는 소통에 성공시대를 90년대 말에 비로소 열게 된다.
1997년, PC통신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그 세대들만의 사랑법을 내세운 영화 [접속]은 그해 최대의 흥행작이라는 감투이외에도 몇가지 주목할 만한 점들이 있다.
본격적인 배급망의 확보와 철저하게 설계된 마케팅은 화려한 액션이나 자극적이지 않은 멜로물일 뿐인 이 영화의 신화적인 성공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으며, 특히 저작권문제까지 해결하면서 몇몇 팝음악을 수록한 사운드트랙 앨범은 한국에서 상품으로서의 영화음악을 새롭게 정의하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단일 사운드트랙으로는 최초로 100만장을 훌쩍 넘어버린 판매고가 말해주듯 이 앨범의 상업적인 성공은 영화 못지 않는 신화로 자리잡기에 충분하다.
몇 곡의 스코어를 제외한 수록곡들은 영화속 주인공들의 흔적을 연상시키면서도 자칫 흩어질 수 있는 긴장감을 훌륭하게 재배치시켜주는 이미지의 나열이자 영화제목처럼 서로에 대한 '접속'에 실패하고 있는 인물들을 훌륭하게 맺어주는 동기로 작용한다.
루리드가 이끌었던 전설적인 밴드 벨벳언더그라운드의 싸이키델릭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아쉬움은 있지만 'Pale Blue Eyes'는 영화속에서 라디오방송국 PD로 분한 한석규의 공허한 사랑의 추억을 상징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엔드크레딧에 사용된 'A Lover's Concerto'는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한 축가로 - 그 이미지만큼은 확실하게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기획력으로 승부한 사운드트랙 앨범이 영화못지않게 관객과의 '접속'에도 성공한 것이다.

이때부터 중요하게 부각되기 시작한 사운드트랙 앨범에서 선곡의 의미는 조영욱님의 기획에 의해서 매번 새롭게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조용한 가족](1998),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1998), [텔미썸딩](1999), [해피엔드](1999), [해변으로 가다](2000), [공동경비구역 JSA](2000), 최근작인 [공공의 적](2002)까지 조영욱님의 기획력에 빛을 발한 사운드트랙 앨범들은 매우 많고 그 장르 또한 다양하다.
해리 닐슨의 팝 음악과 슈베르트의 고전이 어지럽게 어울리는 [조용한 가족]이나 클리프리차드의 'Early In The Morning'이 흥겨움을 더해주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 디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이 작곡가의 음악은 클래식음악에 상당한 조예를 보여주었던 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아이즈와이드셧]이나 한국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그것으로 이미 검증 받았다)와 모차르트, 베토벤까지 시대를 불문하고 끌어오는 이미지의 완성, 여기에 닉 케이브와 같은 뮤지션의 전위적인 색채까지 흡수하면서 오리지널리티를 중요시하는 영화음악의 그 반대지점에서 또 다른 다양성이라는 의미를 지속적으로 부여한다.
그러나 일각에서 제기되는 뮤직 슈퍼바이저의 역할과 조영욱님의 작업패턴에 대한 문제는 그 선곡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다름 아니다.
자칫 잘못 선곡된 팝이나 클래식(하긴 이건 장르의 문제가 아니다)은 영화의 느낌을 상징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미지를 파편화 시키는 주범이 될 수 있기 때문이며, 음반 점에 무분별하게 범람하는 컴필레이션의 값싼 이미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함정이 언제든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영욱님의 작업 역시 그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울수는 없는 듯 하다. 오리지널스코어라는 영화음악 본연의 작업이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성을 지녔기에 약간의 허술함이 보이는 선곡은 사운드트랙 앨범에 삽입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그 필연성을 대중들에게 합리적으로 설명해야하는 시기가 왔기 때문이다. (사실 이 대중적 합의는 사운드트랙 앨범이 흥행이냐, 작품이냐의 기로에 섰을 때 정말 아슬아슬한 지점에 위치한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작인 [공동경비구역 JSA]에 삽입된 김광석님의 '이등병의 편지'나 한대수님의 곡이 삽입된 것은 그 필연성을 넘어 대중음악이 영화 전반의 시점과 메시지를 함축하는 구심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뛰어나다. 한대수님의 걸걸한 목소리나 '왜 광석이는 그렇게 일찍 갔니'라고 읊조리는 - 북한병사들에게도 감동을 주는 단순한 노래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물리적인 경계선도 넘고, 이념의 벽도 넘어서서 우정을 나눈 남과 북의 병사들에게 음악, 노래야말로 비극을 잊고 가장 중립적인 입장에 서고 싶어하는 이 영화의 속내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조영욱님의 선곡작업을 보면서 종종 왕가위감독의 그것을 생각하는데, 마음대로 찍는듯한 그의 영화에는 역시 마음대로 선곡된 감독의 컬렉션이 의외로 영화전체의 균형과 긴장감을 유지하고 이완시켜준다.
또한 곡에 부여된 이미지를 팬시 상품처럼 가볍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지속적으로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론이 되는 긍정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영화에서의 음악, 그 선곡의 묘미는 기억속에 희미해져 가는 영화의 이미지를 아름답게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에 조영욱님의 역할은 소중하다.
앞서 언급했던 일단의 논지는 접어두고서라도 그의 선택이 음악으로 영화를 이미지화 할 수 있는 촉매제의 역할을 했다는 점(음악의 이미지로 그렇게 재미를 본 작품은 실제로 별로 없었다)에서는 그 공을 무시할 수 없다. 실패하면 기나긴 슬럼프에 빠져버리는, 쫄딱 망하기 딱 좋은 척박한 현실에서 성공의 단맛을 보여줄 수 있다면 - 척박한 한국영화의 특성을 고려해 볼 때 그 가능성을 실현시켜 주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럽고도 희망스러운 일인가.
영화음악이라는 대중적이면서도 그렇지 못한 이중적인 모습은 그로 인해 몇 년만에 환골탈태했다. 'O.S.T.가 뭐예요?'나 'Music From The Motion Picture'라는 '있어 보이는' 용어는 그로 인해 좀 더 대중적이 되었다는 뜻일 게다. 적어도 조영욱님은 그 희망의 빛을 실현가능한 것으로 인식시켜준 대중적인 센스를 지닌 기획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Writer 김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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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4box@hanmail.net) boxworld
영화음악가/국내 l 2008/07/2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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