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것이 추억이고 사람이라고 했지만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맺어진 인간관계는 이해할 수 없을만큼 참으로 질긴가보다.
한동안 연락을 못하고 지냈던 후배 한녀석을 정말 어렵게 만날 수 있었는데 역시 예상대로 현장에서 영화를 몸으로 부대끼는중이었고, 영화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는 필자는 뜻맞는 동지를 만난 듯 오랜시간을 술잔을 기울이며 쏟아내듯 영화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술이나 한잔 하자고 만난 자리였지만 결국 영화이야기와 영화음악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는데 이날 필자와 후배녀셕을 결정적으로 취하게 만든건 한 영화의 음악과 한 장의 음반이었고, 한 작곡가의 존재때문이었다.
오늘은 필자를 취하게했고, 급기야 기억의 필름마저 끊어버린(?) 바로 그 작곡가 - 김준석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한국영화음악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전문프로덕션인 M&F의 팀장이자 수많은 장/단편영화들의 작곡과 음악감독을 지내온 김준석님은 비교적 짧은 시간안에 우리에게 다가왔지만 의외로 그 내역을 살펴보면 낯익은 작품들이 발견된다.
이제 한국영화음악계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조성우님과의 친분으로 영화음악계에 입문해 [8월의 크리스마스]의 삽입곡인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의 편곡작업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0여편이 넘는 사운드트랙에 작곡과 편곡으로 참여하고 있는 김준석님은 최근 [결혼은 미친짓이다]를 발표하면서 음악감독으로 정식데뷔를 했다.
대중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장편영화의 음악으로 데뷔를 하기전 수십여편의 단편영화들의 음악을 작/편곡하고 방송음악등으로 다져진 충분한 실무감각을 바탕으로 상업영화로 바뀐 환경에도 탄력적으로 적응하는 영화음악가의 모범적인 역사를 실천하고 있다.
특히 진보적인 자세로 영화음악의 개념을 확장시키고 있는 김준석님의 공로는 최근들어 더욱 빛을 발하는데, 앞에서 잠시 언급한대로 체계적이지 못했던 한국영화음악계의 환경에서 무엇보다 연출자의 개념(영화작업에서 이건 어떤 스탭들에게나 해당되는, 정말로 중요한 개념이다)과 영상작업에서의 음악역할이라는 - 바로 그 기본을 중요시하는 작업패턴은 젊은 연륜을 떠나 앞으로의 영화/영상음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있다 하겠다.
최근 음악감독으로 데뷔를 하면서 발표한 첫 번째 작품인 [결혼은 미친짓이다]의 사운드트랙을 조목조목 살펴보는 것은 자못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준석님은 인터뷰에서 ‘[결혼은 미친짓이다]의 사운드트랙은 관객과의 거리를 고의적으로 염두해두고 작업되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영화와의 합일을 우선으로 모든 작업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상기시킨다면 이것만큼 아이러니한 답이 어디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결혼]이라는 명제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과 관객들의 다양한 판단을 고려한 그만의 음악적 연출이 아닐까?
이런 자유로운 음악적 연출은 관객들에게 음악만으로 100% 몰입을 주지는 못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본다면 그 남은 몫을 작곡가와 관객이 서로 나누고 교감한다는 의미에서 상호보완적이며 무엇보다 그 소통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때문에 이 앨범에 실린 곡들이 주는 라틴뉘앙스와 짚시풍의 음악은 그 자유로운 감성을 매개로 영화의 판단을 관객들에게 되묻는 진정한 ‘영화음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좋게 말하면 체계화, 나쁘게 말하면 주객이 전도되어 가는 산업화의 노선을 걷는 한국의 영화계에서 입버릇처럼 남발되는 영화의 규모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블럭버스터’의 규모에 맞추어야하고, 영화를 좌지우지하는 ‘스타시스템‘에 휘말려 자기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는 숨통조이는 상황이 영화음악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까하는 기우를 갖고 접한 [결혼은 미친짓이다]의 사운드트랙은 재능있는 젊은 영화음악감독의 출발을 축하하는 경연장으로 손색이 없다.
최근 필자가 김준석님과 했던 짤막한 인터뷰의 일부를 소개한다.
짧은 인터뷰에서도 필자는 지금까지의 한국영화음악 역사에서 부재했던 연출과 느낌을 중시하는 영화음악, 관객과의 호흡을 소중하게 여기며 사색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배려깊은 작가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준석님이 우리에게 말하고자하는 메시지가 진정으로 궁금하다면 무엇보다 음악을 들어보라. 아마도 그가 나지막하게 음악으로 말하는 영상의 감흥과 무엇보다 영화음악을 사랑하는 우리들과 간절하게 소통하려는 의지가 가슴으로 와닿을 것이며, 매니아의 한 사람으로서 진정으로 그 소통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소통이 성공할 때 우리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자.
본인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작업해오신 작품들에 대해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저는 현재 영화음악 전문프로덕션인 ㈜M&F의 음악 팀장, 김준석입니다.
이번에 [결혼은, 미친짓이다]라는 영화로 영화음악감독으로 데뷔를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동아방송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있고요. 평화방송에서 영화음악을 소개하는 코너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전에 참여한 작품으로는 1997년 [8월의 크리스마스] 작업으로 영화음악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조성우 음악감독님의 Assistant로 13 작품에 참여를 했었고요. 그 작품들은 [정사] [약속] [미술관 옆 동물원] [용가리]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여고괴담 두번째이야기] [플란다스의 개] [킬리만자로] [순애보]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선물] [세이예스]등이고요. [고양이를 부탁해]에선 M&F 소속 작곡가로서 참여했었습니다. 그 외 많은 단편영화 작업을 했었는데요. 1999년 [어디갔다 왔니](김진성 감독) , 2000년 [즐거운 상상](박선지 감독), 2001년에는 [목요일 3교시](임나무 감독), [으랏차차](여인광 감독), [모든 천사는 수위를 꿈꾼다](김환진 감독), [치열한 전투](부성철 감독), [지나가는 비](서유민 감독), [비가 내린다](오점균 감독), [큰 나무](오점균 감독), [그녀는](박성범 감독), 2002년에는 [Amaranth](하준원 감독), [작용, 반작용의 법칙](한형석 감독), [운동회](여인광 감독), [글라디올러스를 찾아서](김우성 감독) 등의 14편의 작품의 음악을 담당했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TV에서도 좋은 프로그램이라 생각되는 다큐멘터리나 교양프로 등의 음악을 담당했었습니다.
많은 장르의 음악중에서도 영화음악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해주신다면...
사실 대중음악에 뜻을 가지고 있었다가 영화음악에 입문하게 된 것은 무척 우연이었습니다.
11년이나 선배님이셨던 조성우 음악감독님이 좋게 봐주셔서 영화음악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고요. 어릴 적 막연하게 멋있게만 보였던 영화음악을 해볼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해보겠다고 바로 연락을 드렸었지요. 1997년 당시에만 해도 아직 한국영화계에는 전문 영화음악가가 많지 않은 상황이라 모험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해볼 만하다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한 작품 한 작품 참여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정말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열심히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저의 인생에 있어서 영화와 영화음악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 같고요.
개인적으로 흠모하는 영화음악 작곡가와 그 이유, 그리고 영화음악 입문의 계기가 된 작품이 있다면...
좋아하는 영화음악 작곡가는 사실 모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떤 장르의 영화든지 한 영화를 맡아서 음악을 하신 분이라면 정말 저에겐 모두 존경의 대상입니다. 그 중 개인적으로 흠모하는 작곡가는 엔니오 모리꼬네와 에릭 세라입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주옥 같은 멜로디를 많이 만드는 작곡가이기도 하지만, 그가 맡은 400여편의 작품들을 들어보면 정말 다양한 해석을 보여주면서도 그만의 색깔을 담고 있어서 좋고요. 에릭 세라는 기타리스트 출신이던 그가 초창기 전자적인 음악에서 점차 클래시컬한 음악으로 옮겨가면서 현대와 고전의 음악을 잘 조화를 시킨 인물이라 생각되는데요. 그의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되는 모습을 보면 항상 노력하는 작곡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해오신 작업물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으신지? 있다면 그 이유는...
그전에 어시스턴트로 일할 때 했던 한 두 곡들도 모두 기억에 남지만 사실 이번 [결혼은 미친짓이다]의 음악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저의 데뷔작이기 때문이라서 그런것도 있겠지만, 그 전에 만든 음악들은 제가 아닌 음악감독님의 작품에 사용된 것이라 제 작품이라 보기 힘든데, 정말로 제가 하고 싶은대로,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해석해본 작품이 [결혼은 미친짓이다]이기 때문에 그 작업의 결과가 좋든, 싫든 제 기억에는 영원히 남을 듯 싶습니다.
본격적으로 영화음악 작업에 들어가기 전 작업은 어떤 순서로 이루어지는지...
저 같은 경우에는 음악을 작곡, 편곡하는 시간보다 그전에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긴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전체적인 음악의 색깔, 톤 등을 생각하고요. 나름대로 참고가 될 만한 음악, 영화 등을 많이 보고 듣는 편입니다.
시행착오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다시 말해 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음악이 무엇인지 만들어보고, 편집본에 붙여보면서 수정해 나가는 편입니다.
영화음악 제작과정을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영화음악을 하는데 있어서 특히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요소나 개념이 있다면...
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출의 개념인 것 같습니다.
영화음악을 처음 만드시는 작곡가들을 보면, 음악적인 요소들을 많이 따지게 됩니다. 이론적인 것을 비롯하여, 본인의 음악적 욕심까지 고려를 많이들 하시는데요. 사실 그보다 중요한 점은 연출의 개념입니다. 이 영화를 어떻게 관객들에게 보여지게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며, 나 자신을 음악가가 아닌, 영화연출가로 생각을 해야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방향이 정해지면 곡을 만듭니다.
현재 몸담고 계신 영화음악 전문프로덕션 M&F에 대해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1999년 12월 10일에 창립된 (주)엠엔에프씨 Music & Film Creation Co., Ltd (M&F)는 영화음악제작 시스템을 기업 자체 내에 완벽하게 갖추고 창의성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한국영상음악을 책임져갈 영화음악전문 프로덕션입니다.
현재 5분의 작곡가와 2명의 엔지니어를 비롯 총 14분이 계신 작은 회사이지만, 유명한 한국영화의 음악을 많이 배출해낸 회사입니다. 현재 Composer group과 Engineer group이 함께 영화음악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음악작업을 많이 해서 그런지 영화음악쪽일로만 알려져있긴 하지만, 현재 가요사업쪽도 활발히 진행중이고요. 그 밖의 많은 일들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한국영화음악의 현주소와 개선을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
제가 보는 한국영화는 약 5-6년 전부터 급속도로 발전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음악의 중요성도 같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 같은데요. 초기에 컴필레이션 음반 같은 여러 팝송을 사용한 음반들의 성공으로, 아직까지 유명한 팝송 사용을 지향하는 영화인들이 많이 있는데요. 이는 영화의 무대를 한국내로만 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전 세계를 바라보고 이젠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인데요.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영화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순수 한국 영화의 스코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아직 미흡하다고 할지라도 계속 꾸준하게 한국영화음악을 발전시켜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아직 턱없이 부족한 제작비와 너무 짧은 후반기 기간이 문제라면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투자자분들이 잘 이해를 해주셔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문제입니다.
영화음악에 관심있는 팬들과 영화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개인적으로 만나본 분들 가운데는 '저도 영화음악을 좋아해요'라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분들이 영화에 삽입된 팝송이나 노래들을 많이 좋아하십니다. 아직 우리나라엔 연주음악에 대한 사랑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매니아층이 얇은 것이 사실인데요. 하지만 그 몇 안되는 매니아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들이 힘을 내고 열심히 하려는 것 같습니다. 꾸준한 노력으로 한국에서도 영화음악이 많이 사랑받는 일을 모두가 함께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미팅중인 몇 편의 영화 작업이 있고요. 앞으로도 계속 영화음악에 몰두할 생각입니다. 물론 여유가 생기면 솔로음반 작업도 할 예정이고요. 영화와 음악에 관련된 어떤 일이라도 하고 싶은 게 소원입니다.
- Writer 김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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