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관희
친구 한녀석이 큰맘먹고 DVD 매장에 다녀온다고 했다.
돈도 돈이지만 잘못 구입했을때 닥쳐오는 엄청난 후회(디스크 한장을 잘못 샀을때 느껴지는 자괴감은 생각보다 크다)를 막기위해 형성된 수많은 DVD 커뮤니티들에서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샅샅이 탐색하고 갔고 결국 그 친구가 사들고 온 것은 우리나라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에, 좋아하는 음악이 담긴 DVD를 사들고 오는 바람에 웬지 기특한(?) 생각도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궁금함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친구가 사전조사를 통해 얻은 정보에 의하면 구입타겟이 된 영화들은 [8월의 크리스마스]와는 전혀 딴판인 작품들인 동시에 자신의 취향과도 다소 동떨어진 작품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블레이드] [매트릭스] [엑스맨]을 사겠다고 적어놓은 메모지를 필자가 못봤다면 결과에 대한 의구심은 아예 있을수도 없었겠지만 이 상반된 결과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결국은 닥달하듯이 물어보게 되었고 그 친구의 답은 역시 예상한대로였다.
커뮤니티 사이트와 몇 작품의 현장시연을 통해서 단련된 DTS와 5.1채널에 대한 찬사도 결국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 두고두고 볼만한 작품을 구입하겠다는 의지앞에서는 별 매리트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 친구의 대답이었다.
아마도 어쩌면 - 아니, 실제로 이 얘기는 이미 많은 이들의 입에서 열띤 논쟁거리가 된바 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사람마다의 가치기준이 틀리다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가면 이 질문은 당연히 해답없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사실 DVD라는 생소한 매체가 처음 등장했을때 필자의 경우 가장 기뻤던 사실은 극장상영시의 화면비를 그대로 살리는 등 원형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그러니까 영화 그 자체를 온전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DVD가 VHS에 비해 엄청나게 향상된 화질을 자랑한다는 둥, 멀티채널을 지원하는 깨끗한 오디오는 부가적인 것으로 인식할 정도였다.
물론 이 개념없는 정의는 실제로 DVD를 접하면서 그 잡다한 지식을 모두 정리해야 할 만큼 쇼킹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DVD가 본격적인 대여용시장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봤을때 이 매체는 분명 매우 비싼 고가의 취미생활을 강요한다.
책의 판매부진으로 국내굴지의 서점이 문을 닫고 대학에서는 전공서적마저도 복사를 거듭해보는게 공공연한 현실임을 돌이켜본다면 고작 몇장의 디스크가 형성하는 몇만원, 혹은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으로 대변되는 몇십만원의 가격을 호가하는 이 매체의 상반된 모습은 컬렉터들로 하여금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지 다시금 되묻는 것 같다.
장인의 솜씨, DVD의 궁극... 수많은 찬사를 한몸에 받고있는 그 유명한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조차도 중고시장에서 너무나도 찾아보기 쉽다는 현실을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필자의 생각뿐일까. 앞서 언급한대로 DVD가 대여용시장을 형성하지 못한 현실은 DVD가 애초 추구한 것이 '영화의 라이브러리'라는 것을 한번쯤 상기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는 구입하는 DVD에는 영화에 담긴 모든 가치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상당부분 지배한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러나 누구나 영화전문가가 될 필요가 없듯이 영화제작의 뒷얘기가 담긴 화려한 스페셜피쳐들이나 어느 잡지에서 본 기억대로라면 '이 장면에서 쓰인 소품은 지금 내가 식탁보로 쓰고있다'는 한심한 수준의 커멘터리라면 이것 역시 있어도그만, 없어도 그만인 옵션사항이 아닐까?
DTS와 5.1채널같은 개념 역시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해오고 있지만 이런 부분에는 이상하리만큼 관심을 두지 않는데 제작사가 약속을 어긴 경우라면 리콜은 물론 뭐든 강행할만 하지만 원형을 훼손시켜가면서까지 제작된 이상한 5.1 나부랭이에 대한 환상은 정말이지 이제는 접을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프리츠랑의 [메트로폴리스]나 [전함포템킨]의 DVD의 발매소식에도 5.1과 DTS를 습관적으로 연결시키는 현실을 보면 지나친 집착인지, 일부러 그러는건지 - DVD라는 첨단의 이 매체는 정말 이상한 개념을 정착시키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했을때의 진정한 기대심리중 하나는 아마도 흘러간 역사를 보다 나은 환경과 저장매체를 이용해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이다.
필름과 VHS라는 저장매체의 취약성은 DVD라는 우수한 기술로 완벽한 보존이 가능해졌고 우리는 그렇게 보관되는 기록의 현장을 목격하며 마음만 먹으면 소유도 할 수 있다.
다중채널 오디오가 때려주는 화려한 음장효과와 선명한 화질도, 늘 궁금했던 영화제작의 뒷얘기도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지만 그것보다 더 우선순위로 매겨져야 할 것은 역시 그 필름의 역사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DVD 또 다른 목적이다.
디지털이라는 차가운 개념이 보다 인간중심의 사고로 전환되는 시점에 DVD가 일조할 수도 있음을 기억하면서 그 겉표피의 화려함도 좋지만 때로는 오래된 친구처럼 자주 꺼내봐도, 오랫동안 보관해도 늘 따뜻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이 충실한 자신만의 컬렉션을 구축할 때 DVD는 진정한 자신만의 라이브러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집에 비치해두고 'DVD란 이런거야'라고 보여주기위한 전시용 컬렉션은 이제 슬슬 접고(이미 대중화의 길로 접어들었으니 이제 이런 전시효과도 얼마 못 갈 것이다) 자신만을 위한 수집에 열중하자.
고민끝에 구입했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를 지금도 몇번씩 깨끗한 화질로 볼 수 있는 현실이 즐겁기만 하다는 친구녀석이 더 기특하게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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