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좀 들었다고 자부하는 매니아들의 팔자가 다 그렇지만 필자역시 영화음악이전에 어린시절을 사로잡고 지배당하게 만들었던 음악들이 있다.
록에 몰두했던 시절, 정말이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큰 충격을 주었던 엄청난 속주기타의 달인 잉베이맘스틴이 그랬고, 무대위를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귀여운(?) 액션뒤에 엄청난 테크니션의 자질을 감추고있던 김수철이 그랬다.
그들의 음악자체에만 몰두했던 초기를 지나 시간이 흐르면서 최근에 들어서야 이 둘의 행보에서 느껴지는 공통점을 어렴풋이 정리해볼 수 있었다.
한명의 뮤지션은 오케스트라와 록음악을 절묘하게 조합시켰고, 또 한명의 뮤지션은 무관심한 자국의 음악을 발전시키는 작업을 수십년째 해오고 있다. 뛰어난 기타테크닉을 자랑하는 록뮤지션, 또는 록이라는 장르에 안주하지않고 새로운 영역과의 조우라는 가능성을 끊임없이 타진하는 개척정신... 이 모두 틀린말이 아닌데도 점점 더 이들의 역사를 과장하고 싶어지는 것은 이들의 업적이 단순나열식으로 그치면서 공허하게 잊혀져가는 것을 웬지 거부하고 싶은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업적에 대한 찬사는 어떤 미사여구로 표현할 것인가.
필자는 그 해답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장인'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로 했다.
장담하건데 김수철이라는 이름 - 이 장인의 이름 석자는 적어도 새로운 세대의 음악이었을뿐만 아니라 한국의 근대영화음악 역사와 동일선상에 있다. 이것은 괜한 과장이 아니다.
그가 혼자의 힘으로 쌓아온 인고의 역사로 인해 한국의 영화음악은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받을 수 있었고, 현재에도 그의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이해는 고작 '대중음악가로 국악을 좀 더 파헤친 인물'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잘못이다. 그만큼 김수철이라는 이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부족하기만 하다.
많은 분들이 알고계시다시피 '일곱빛깔 무지개'를 부르던 하드록의 충실한 실천가였던 김수철은 첫 번째 변신을 상업적인 코드에서 싹틔우게 되는데 그 결과의 산물인 '못다핀 꽃 한송이'의 성공은 그에게 정말로 많은 것을 안겨다 주었다. (당시 대부분의 가요상을 휩쓸다시피 했던 이 음반의 상업적인 성공은 지금도 그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다) 적당한 매너리즘에 빠져도 평생을 보장받을만한 부와 명예를 짧은 시간내에 거머쥔 것인데 바로 이 무렵과 동시에 믿을수 없는 그의 두 번째 변신이 시작된다. 우리가 주목하는 장인 김수철의 모습은 바로 이 시기에서부터이다.
인기와 부를 한몸에 받는 대중가수라는 직업을 포기한다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인기가 떨어짐을 두려워한다는 뜻이 아니라 대중가수임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은 다음 작업을 위한 경제적인 기반마저도 위태로워지는 결과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택한 새로운 모험이 바로 영화음악이다. 작업의 전문화가 이루어지지못한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본다면(당시 영화에서 시스템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헐리우드의 얘기였다) 영화음악을 하겠다고 선언했던 그의 발상은 다소 시대착오적이라는 인상마저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적인 시각을 잠재우고 한국 영화음악사에 한획을 그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김수철의 실천의지가 빚어낸 결과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가 80년대에 인기가수, 영화배우(영화 [고래사냥]에 병태역으로 출연해 이미숙, 안성기와 호흡을 맞춘 바 있다)등의 칭호를 잠시 접고 발표한 영화관련 음악의 숫자는 족히 20여편을 상회하고 있어 김수철의 역사중 영화나 영상관련 작업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단일앨범으로 발표된 [성 리수일뎐] [두 여자의 집] [칠수와 만수]등과 베스트형식으로 발표된 음반도 2종이나 되는데 특히 이 시기의 앨범들이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은 사운드트랙 앨범이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정착시키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김수철 최초의 사운드트랙 앨범인 [성 리수일뎐]은 주제곡 한곡만을 제외한 전곡을 연주곡으로 편성하는 과감함을 보여주었는데 스코어위주의 음악편성으로 제대로 형식을 갖춘 영화음악의 진수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할 작품이다.
클래시컬한 분위기로 급선회하고 있는 [두 여자의 집]은 곡의 드라마틱한 전개방식과 더블앨범형식의 자켓으로 제작된 정성스러운 커버아트로 매니아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후에 발표된 몇몇 앨범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올림픽의 열기가 뜨거웠던 1988년에 발표된 [칠수와 만수](박광수 감독의 데뷰작)는 연극에서 보여주었던 주제의 참신함을 영화로 잘 옮겼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며, 수록곡인 '무엇이 변했나'를 통해 한국최초의 랩을 구사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국악이라는 새로운 화두가 그의 음악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김수철의 영화음악은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국악의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 시기의 작품들은 그가 왜 한국영화음악계에서 중요한 인물인지를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편제] [태백산맥] [창] [축제]등 임권택감독과의 작업들은 이미 그 자체로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느끼게 할 만큼 크기만한데 특히 [서편제]의 음악은 우리의 소리를 호기심의 대상이 아닌 일반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소리'가 주가 된 영화이지만 미묘한 감정을 아우르는 주체는 김수철이 작곡한 오리지널 스코어임에 틀림없다)
당시 관객 100만 입장이라는 문구가 떠들썩했던 이 영화는 국민영화로, 꼭 봐야할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갔던 상황 때문인지 객관적인 시선을 확보하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기선택 하나하나에도 신중에 신중을 기한 - 우리소리에 오히려 무지한 대중들에게 안겨준 선물이 그의 음악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태백산맥] [축제]의 음악은 우리소리에 대한 그의 애정과 관심이 정점에 오른 걸작인데 한민족의 감정선을 절묘한 편곡으로 다듬어 낸 그의 실력은 이미 당대 최고라는 격찬이 아깝지않다. (최근 들어 재발매 되었다) 1997년에는 그의 영화음악들을 집대성한 베스트앨범이 2개로 나누어져 발표되었는데 이것은 단순한 베스트앨범의 차원을 넘어 척박했던 한국영화음악의 역사를 개척해 온 선구자의 회고록에 다름아니다.
그러나 사비를 들여 개량장고를 만들고, 국악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부르짖는 그에게 우리들이 준 것은 저조한 음반판매고에서 드러나듯이 너무나도 커보이는 싸늘한 무관심뿐인 시선이다. 오기만하면 극진히 모셔가겠다는 일본의 제의를 단번에 뿌리친 그에게(일본측에서 개명을 요구하여 이 제의는 무산되었다는데 100억원 회사인수제의를 뿌리친 안철수님의 그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지않은가) 막상 우리들이 장인으로 살아가기위해 힘을 실어준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수상이 결정된 무용제 음악상 부문을 대중음악가라는 이유로 박탈해버리는게 우리음악계의 현실이다.
이글을 통해 그의 영화음악을 위주로 소개했지만 그의 음악세계는 이미 그것을 넘어섰다.
[불림소리 1, 2] [황천길] [88 서울올림픽 행사음악] [팔만대장경]등 앨범으로 발매된 작업이외에도 [86 아시안게임 행사음악] [엑스포음악] [2002 월드컵 행사음악]등 그가 손을 댄 작품들은 하나하나가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적 아이콘이 되어가고 있으며, 그것은 곧 한국의 유산이기도 하다.
우리음악의 아름다운 조화를 위해 평생을 바쳐온 이 작은 장인에게 조금 더 힘을 실어주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그가 음악으로 말하는 나지막한 소리에 귀기울일 줄 아는 작은 관심이 그의 음악을 살찌우는 거름이 될 것이며, 이미 그 자체로 시간의 예술인 매체 - 바로 그 영화라는 매체는 김수철의 음악으로 인해 더 빛나는 생명력을 부여받을 것이다. 그에 대한 재평가와 관심은 지금부터라도 이루어져야 한다.
● 아래의 인터뷰는 월간 '키노'에서 발췌/게재 하였습니다
록과 국악, 신서사이저와 대금, 드럼과 장고, 무대음악과 악기개량까지 '작은거인' 김수철이 소리를 벌이는 공간은 무한하다. 그는 소리로 행하고 소리로 이루어 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그것이 김수철의 상상력이다. 영화음악을 한다는 것은 그에게 소리로 영화를 연출하는 것이며, 이 시대의 소리를 영화로 남기는 기록작업이다.
언제까지나 나이가 들지 않을 것 같던 그가 불혹의 나이에 들려주는, 지난 십여년간 빚어낸 영화음악의 원칙과 궤적, 혹은 한계없는 욕망.
록으로 시작해서 영화음악에 이른 창작자로서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록이 대중음악의 한 장르인 반면 영화음악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시대를 반영한 영화와 멜로드라마와 다큐멘터리가 다르듯.
물론 나도 록에 심취했었고 지금도 좋아한다. 청춘영화라면 록을 쓸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영화로부터 출발하며, 개인적 장르의 선택이 결코 아니다. 영화음악은 시나리오의 해석이 우선이다. 그리고 감독의 연출 스타일과 영화적 비전에 맞추어 그것을 소리로 요리한다.
언제나 감독에 초점을 맞추는게 중요하다. 많아봐야 2, 3곡이지만 영화음악은 사건의 전개와 암시, 인물의 심리적변화를 다르게 연출해야한다. 기본적인 음악성은 필수고 영화를 알아야 하며, 작업강도도 훨씬 높다.
작업스타일은 가편집이 끝나고 음악시간을 계산해서 작곡하는 편입니까, 컨셉트를 이해한 후 러쉬를 보며 해나갑니까
요즘 그렇게 프레임 단위까지 계산해 영화음악을 한다고들 하는데, 사실 음악가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영화에 따라서, 그야말로 그 음악의 '시간'이란 케이스바이케이스이다.
미스테리 스릴러나 액션영화등의 경우는 시간을 미리 잴 필요도 있다. 흥미가 이끌어가는 드라마에서 극적인 반전의 도움닫이는 음악이니까. 하지만 지속적인 느낌의 영화에서 음악의 시간이 한정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것이 무슨 음악인가. 영화음악은 시나리오의 분석이 첫번째이다. 마치 책을 읽고 이해하듯, 시나리오를 읽고 소리를 연출하는 것이다.
감독과 상의할 때 주로 무엇을 물어보십니까?
아무것도 질문하지 않는다. 굳이 하자면 주로 영화적인 것들이다. 어떻게 연출할 건지, 스피드 혹은 스케일이나 느낌... 감독들이 음악적인것을 물으면 내가 설명한다.
시퀀스, 쇼트, 내러티브, 인물 중 영화음악의 선율을 어느쪽에 맞추는 편이십니까?
(웃음) 다 맞춰서 한다.
어설프게 영화음악 하는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데, 그중 어느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인물과 사건이 있고 동기부여가 필요하니까 음악은 말없는 인물의 대사, 이야기의 흐름일 수도 있다. 특정 쇼트가 중요하면 쇼트를 기준으로 삼고, 시퀀스가 한 호흡으로 가야하는 경우는 또 다르다. 그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음악이 또 다른 나레이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나레이션이란 필요한 것을 최소한 설명하는 영화적 장치다.
음악은? 무표정한 인물이 있다. 그 무표정은 긴장감의 표현일 수도, 정열과 불안일 수도 있다. 이렇게 보이지않는 무수한 의미와 변화를 전달하는 것이 음악이다.
사건과 시공간을 설명하는 고전적 나레이션이 아니라 보이스 오버 나레이션이 이미지와 다른 전혀 새로운 의미를 낳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 반어적 나레이션은 음악으로 이어지는 확장된 의미이다.
실제로 영화음악이 그런 구실을 하는 경우가 많다.
주제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수였지만 요즘은 주제가를 쓰지 않으시는데요.
영화주제곡이란 흔히 흥행을 따질 때의 발상이다. 노랫말은 음악으로 이야기를 한정해버린다.
본래가 설명적인 노랫말은 풍성한 이미지를 줄여놓는다. 요즘 유행처럼 가수에게 영화음악을 맡기지만 가수가 한번 영화음악을 맡았다고 그를 영화음악가라 부르지는 않는다.
요즘 내가 맡아온 영화들은 거의 그런 기준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고, 무엇보다 나는 소리를 한정하기 싫어한다. 그건 내 작업의 원칙이다.
영화음악이 단지 백그라운드 뮤직이라 보는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대체 백그라운드 뮤직이 뭔가. 그건 단지 영화음악일 뿐이다.
전문성이 결여된 말도 안되는 논리다. 대답할 가치를 못 느낀다.
화면의 이미지와 선율의 관계, 즉 경사진 화면은 하강하는 느낌, 수평적 구도는 평이한 선율로 구성된다고 보는 견해도 있는데요.
그런 원칙아닌 원칙들이 창작을 방해하는 요소이다.
왜 하필 하강, 수평인가. 소리가 안 날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주장들을 인정도 하지 않으며, 그런 방식으로 완성된 훌륭한 영화음악이 있어도 그 사례를 원칙으로 삼아선 안된다고 본다. 그 영화의 시대와 정신, 감독에 관한 이해 등 배경을 무시하고 성급히 원칙화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논리이다.
신디사이저가 영화음악에 잘 맞는 악기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서편제]의 국악을 신디사이저로 했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사운드트랙을 잘 보라.
대금이면 대금, 연주자는 누구... 이런식으로 모두 기록되어 있다. 내가 신디사이저를 쓴 것은(나는 영화음악에 특별히 맞고 안맞는 특정 악기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전통소리가 현대적인 악기와 어울려 어떠한 새로운 소리를 내는가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급적 기피하는 악기가 있다면?
없다. 소리나는 것이라면 다 좋다. 그러나 어떨때는 너무 힘들어서 소리나는 것이 모두 싫을때도 있다.
악기들이 많이 개발, 개량되고 있는데 영화음악에서 도전해보고 싶은 악기가 있습니까?
악기개량은 바로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이며 평생 연구해야 할 숙제다.
지난 93년 엑스포에서 개량장고를 발표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문화란 보존, 계승, 발전되어야 하는데, 그나마 보존은 되는 편이지만 발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시대마다 사람과 문화가 다르듯 소리도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내가 악기개량에 몰두하는 것도 이 시대의 소리는 어떤 것인가 하는, 내 오랜 탐구의 문제이다.
음의 가청/불가청 영역의 범주에서 사운드의 대시빌을 어느정도를 선호합니까?
대시빌이란 단위로 말하는 가청/불가청 음이란 음대의 교과과정이나 의학에서 쓰는 용어인데, 일반적인 대중문화의 음악들은 거의 가청영역으로 가게 마련이다.
나는 틀을 정하지 않지만 감상을 위한 대부분의 곡은 가청영역에 있다. 그러나 쇼킹한 효과나 심리묘사를 위해서 특별히 쓰기도 한다. 그 정도를 정하는 것은 개인의 선호도가 아니라 화성학적 계산에 의한 것이다.
당신은 영화에서 음악을 들리지 않게 쓰는 편입니까? 그 반대입니까?
작품마다 다르다.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당신이 작업했던 작품을 예로 들어주십시오.
일일이 기억나지 않지만, [경마장 가는 길]이나 [그들도 우리처럼]은 거의 들리지 않는 영화음악이다. [태백산맥] [칠수와 만수] [베를린 리포트]는 군데군데 음악이 강할 필요가 있었다. [서편제]는 잔잔하게 가다가 남매가 만나는 장면에서 한번 울려주는 느낌이다.
최근 몇년간 마치 의도적으로 현대가 배경인 영화들을 피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이 듭니다.
한번쯤은 그룹 음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록이나 랩도 쓰고.
최근의 국악이미지 때문인지 '젊은'작품들이 들어오지 않는다. (웃음) 하지만 꼭 한번 하고 싶어서 요즘 기타를 다시 잡고 있다.
자신의 음악을 믹싱할 때 직접 관여하는지 궁금합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안다.
물론 당연히 관여한다. 하지만 아닌 경우도 많다. 나는 소위 텃세를 거치는데 3년 걸렸다. 막말로 후반작업을 휘저을 줄 알아야 - 그러니까 믹싱작업에 발언권을 가질 수 있어야 영화음악가로 등단하는 셈이다.
볼륨과 톤까지 조절하는 뮤직디렉터의 역할을 해야 한다. 믹싱스탭들도 어떤 보정을 원하는지 다 알지만 그것을 고쳐 완성해야 비로소 영화음악이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 음악이 시작되고 사라지는 순간 중 어느쪽이 더 중요하며 어떻게 정하십니까?
나는 처음부터 그것을 미리 염두해두고 작곡한다.
중요하고 어려운 부분이다. 소리연출의 처음이자 마무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곡을 맞춘 시간대로 쓰거나 녹음하지는 않는다.
그건 사실 믹싱작업에서 최종적으로 결정되기 때문 아닌가요?
그렇다. 말하자면 작곡과 녹음은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믹싱이다.
하지만 작업시간이 너무 짧다. 우리는 효과음 기술이 선진국에 비해 무척 약하다.
외국에서는 한번 쓰고 버리는 재료를 우리는 반복해서 사용하니까 사운드가 많이 깎인다. 하지만 사실 영화음악가들은 기술적인 한계까지 계산하고 작업해야 한다.
전에는 모노로 녹음하면 극장설비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이때는 하이(고음)를 더 주어야 관객에게 소리가 들린다. 즉, 영화음악가는 영화가 완성되어 극장에서 상영되는 과정까지를 이해하고 마무리 연출까지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음악을 다룬 영화가 별로 시도되지 않았는데 혹 그런 제의나 욕심은 없었습니까?
사실은 10년전부터 꿈꿔온 것이다. 언젠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음악가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만의 음악을 하기를 원할텐데 영화음악 작업의 한계를 느끼지 않으십니까?
나는 영화는 철저히 감독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영화음악의 한계를 이야기 할 거라면 시작하지도 않았고, 이리 오래 하지도 않았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왜 스스로 주인공이 아닌 음악, 영화음악을 하기로 결심하셨습니까?
나는 소리를 좋아한다. 대학때부터 내가 어떤걸 표현하고 싶었던 유일한 수단은 소리였다.
난 영화음악만 하지는 않는다. 무용음악은 입체공간의 동적인 소리, 영화음악은 움직임과 스토리가 담긴 이미지의 소리, 행사음악은 빛과 소리의 현재적 만남이다.
이 시대의 소리를 통해 내가 표현하는 살바도르 달리의 느낌, 전혜린의 느낌, 풍경이나 책의 느낌. 영화음악은 내게 이런 의미이다.
- Writer 김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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