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이번에 다룰 한국의 영화음악가로 뜻밖의 인물을 선정하면서 글을 시작하기 전에 약간은 억지스러운 질문하나를 먼저 던지고 갈까 한다.
첫 번째 질문, 영화 [성공시대](1988)로 시작해서 [우묵배미의 사랑](1990) [화엄경](1993)의 사실적인 이미지에 집착하던 감독은 [나쁜영화](1997) [거짓말](1999) 그리고 정체불명의 영화 [성냥팔이소녀의 재림](2002)로 그의 영화제목처럼 - 마치 거짓말같은 영화역사를 만들어간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늘어가는 작품의 리스트와는 전혀 무관하게 점점 더 현실과는 무관심해지고 유치해져가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두 번째 질문, 한국록계의 살아있는 신화(지금도 현존하며 그 자체로 이미 전설이다) 시나위와 H2O에서 최고의 베이시스트로 군림하였으나 마치 장난치듯이 활동했던 삐삐밴드의 유쾌함을 관통하며 이제는 신바람 이박사에 버금가는 경박함과 둔중한 사운드를 동시에 구사하는 테크노뮤지션이 되었다.
역시 그의 음악은 시간의 흐름이나 시대적조류에 점점 더 무관심해지고 마치 처음부터 작정이라도 한 듯이 유치해져만 가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이 괴이한 질문으로 인해 ‘저급문화’라는 코드를 떠올리기보다는 새로운 문화의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려는 두명의 작가에 대한, 또는 그 작가들의 현재진행형인 사고에 집착하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더욱 주목하는 것은 그 새로움을 - 뜬금없이 밀라쿤데라의 소설제목을 인용하자면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처럼 오인될 소지가 다분히 있는 - 음악으로 실천하고 있는 최전방의 뮤지션 달파란의 존재감인데 이번에 이야기하는 하는 영화음악가가 바로 그이다.
달파란이라는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이름으로 존재감이 알려지기전 우리는 ‘강기영’이라는 베이시스트로서의 과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영화작업과는 전혀 무관했던 이 시절의 이야기를 건너뛸 수 없는 것은 현재 종잡을 수 없는(때문에 필자는 앞에서 ‘현재진행형’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의 음악성과 영상에 대한 집착을 알아가는 최소한의 단서이자 가장 현명한 방법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80년대와 90년대를 동시에 관통하는 한국록음악의 계보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 시나위에서 음악을 시작한 강기영은 당시 헤비메탈씬의 방향성을 약간 비튼 과도기에 해당하는 H2O에서 박현준, 김민기등의 뮤지션들과 함께 현대적인 감각을 지닌 록밴드로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도모한다.
바로 이 시기가 강기영에게 결정적인 이유는 자신의 근간을 이루는 음악의 방향의 변화를 모색하고 그 색깔을 바꾸는 위험천만한 시기이기 때문인데(대부분의 뮤지션들이 자신의 음악색깔을 바꾼다는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안다) ‘삐삐밴드’와 ‘삐삐롱 스타킹’의 결성과 잇단 해체는 실제로 그의 변화가 매우 위험한 줄타기였음을 입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심각한 음악에서 오는 노곤한 피로’가 싫어졌던 이 시기에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쉬운 연주와 경박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가벼운 가사, 의도된 촌스러움과 기본적인 형식마저 파괴시킨 보컬발성법 등 - 말하자면 이상적인 순수를 꿈꾸는 언더그라운드에의 지향이었던 것이다.
무한하게 반복되는 루프(Loop)사운드와 샘플링이 주요 모티브가 되는 테크노양식은 이런 과정속에 자연스럽게 강기영의 새로운 음악적 아이콘으로 자리잡아갔고 우리가 주목하는 그의 음악세계 - 장난스럽고 놀이처럼 추구하는 테크노음악의 세계 - 인 강기영의 또 다른 이름 ‘달파란’의 시대는 지금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과거를 모르는 현재의 음악인인 그에게 영상은 새로운 음악적 동기인 동시에 무한한 발상법이 되었고 모던한 사고와 지나치게 엄숙한 척 하는 대중예술을 비웃는 풍자로 점철된 장선우 감독과의 공고한 협력체제는 거부할 수 없는 기이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장선우 감독의 [나쁜영화]는 정말 나쁜영화일까?
도발적인 제목과 극영화의 규칙을 일정부분 파괴하고 들어가는 과감한 구성, 사실과 허구를 묘하게 ‘짬뽕’처럼 섞어놓은(왜 필자가 ‘짬뽕’이라는 표현을 쓰는지는 이 영화의 음악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황신혜밴드의 그것... 이 정도면 힌트가 될까?) 전위적인 영상과 일치하는 음악의 이미지는 이미 그 자체로 후속작인 [거짓말]의 전초전에 다름아니다.
음악감독을 맡은 달파란은 이미 이 영화의 음악작업을 통해 갈때까지 가보자는 극한의 상황을 예고라도 하듯 인디밴드의 ‘질서정연하게 나열된 무질서의 음악‘에 작품의 본질적인 뉘앙스를 투영하고 있으며, 그 혼란의 선율은 영화의 주제와 일치하고 과도하게 남용되는 촌스러움으로 인해 오히려 더 강력한 힘을 얻는다.
음악에 의한 메시지의 전달과 개성이 동시에 공존할 수 있는 달파란의 기획은 성공한 것이고 그러한 이유로 인해 영화의 제목은 나쁠지몰라도 음악은 ‘좋은음악’으로 부를만 하지 않을까? (‘나쁜영화’에 ‘좋은음악’이라...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장선우 감독과의 두 번째 작업이자, 달파란의 음악이 본색을 드러내는 중요한 시점 - 바로 그 지점에 위치해 있는 작품이 [거짓말]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솔직함이다’라는 감독의 의도에 비추어 봤을 때 [거짓말]의 사운드트랙은 최상의 작업일수도, 아니면 최악의 작업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달파란의 작업은 - 적어도 영화에 사용되는 순간만큼은 - 음악의 질과 의미를 따지기에는 너무나도 파격적이며 동시에 솔직하다못해 직설적이다.
테크노사운드에 대한 그의 관심이 본격적으로 투영되기 시작한 작품답게 시종일관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는 루프클립과 양념처럼 쏘아대는 이박사의 추임새는 장난스럽다.
첫 번째 트랙에서부터 거침없이 쏟아내는 뽕짝류의 추임새와 경박함의 극한까지 가려는 듯 나른하게 등장하여 끝까지 반복되는 보컬부는 앨범전곡의 분위기를 대표하며 단순명료한 영화의 이미지에 대한 상징으로 부족함이 없다.
‘거짓말 시작’에서 이 ‘거짓말 끝’으로 마무리되는 제목에서도 감지되듯 이 앨범은 의도된 컨셉트구조를 띄고 있으며 거의 동일한 구성으로 작업된 처음과 끝트랙을 제외한 나머지곡들은 트랙의 순서에 따라 단순해져가는 구조를 띄고 있는데, 이것은 영화속 주인공인 두 남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도입부의 상황이 종료된 후 쾌락을 찾아 헤매는 과정을 단순한 패턴으로 상징화시킨 것이다. ‘나는 육체의 환타지’라는 알듯말듯한 메시지를 끊임없이 토해내는 동명곡과 바로 이어지는 ‘거짓말 끝’은 최고의 절정에 이른 남녀의 모습 - 하지만 곧장 다가오는 행위후의 허탈함을 상징하듯이 극적으로 상반된 구조를 띄고 있다.
이 사운드트랙을 두고 구성의 경박함을 욕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달파란이 창조해낸 것을 생각해 보자. 단순패턴이 주는 반복과 고의적으로 연출한 특유의 경박/유치함으로 인하여 영화 [거짓말]이 준 충격에 좀 더 힘을 실을 수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또는 달파란이 음악으로 살짝 비틀어놓은 거짓말에 2시간동안 속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아직은 개봉되지않은 영화 [성냥팔이소녀의 재림]의 카피문구가 문득 떠올랐다. 'SF 액션 신비극‘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앞세운 이 영화가 장선우 감독의 새로운 성공의 열쇠가 될지, 아니면 영화 [거짓말]을 보고 장선우 감독에게 속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대중들을 다시 한번 멍하게 만들어 양치기소년같은 운명으로 안내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성공과 실패의 계산을 하기전에 우리는 달파란이 담당한 사운드트랙 앨범을 매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그것으로 이 영화의 진수를 약간이나마 느낄 수 있다.
적어도 [성냥팔이소녀의 재림]의 사운드트랙 앨범에서 확인한 바로는 전작들보다 - 아니, 그가 개인적으로 행해왔던 모든 작업들보다 더 미니멀하게 변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번 사운드트랙에서 감지되는 시대와 유행을 가뿐하게 초월(다른말로 비틀자면 ‘무시’)하는 달파란의 음악편성은 강타가 부르는 주제곡만 제외한다면 정말이지 당혹스러울 정도이다.
만약 SF라는 장르의 기본적인 토양마저 전혀 느낄 수 없는 이 앨범이 또 다시 그에 의해서 의도된 것이라면 달파란이라는 인물은, 그가 만들어낸 단순함의 극치는 영화음악계에서 정말 특출하게 인정받아야 할 터이다.
왜냐고? 강기영이라는 본명을 버리고 테크노뮤지션으로, 혹은 DJ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움직일때 그가 쓰는 이름인 달파란 - 그 이름의 내면에 ‘놀아보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본다면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도 그 연장선상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고, 적어도 영화라는 매체와 그안의 음악을 이렇게 홀대시한(?) 인물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극단적으로 가볍다고 폄하했던 그의 음악에 우리는 늘 매료당해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 - 그의 시시함(이 표현에 대한 오해가 없으시길)은 이미 하나의 코드로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껌씹는 유쾌한씨’를 등장시켜 ‘불가능한 작전’에 성공하고 ‘거짓말’을 관통해 ‘재림’에의 성공을 꿈꾸는(단 2장뿐인 영화 사운드트랙의 빈약한 경력마저도 놀라울 따름인) 달파란의 일대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앞으로 무슨일을 벌일지 모르는 그의 문화편력 - 과연 당신이라면 거부할 수 있겠는가...
- Writer 김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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