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세상 OST-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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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혼돈과 과도기의 시대를 정면으로 관통하면서 영상미학의 완성을 음악으로 표현해낸 음악가들이 있다. 한국에서 영화음악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척 고된 일이라는 것을 이미 여러번에 걸쳐 밝힌바 있지만(이들에겐 헐리우드 시스템에 볼 수 있는 전속 오케스트라와 같은 개념은 꿈같은 이야기다) 개선된 영화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상황이 썩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작곡가 송병준은 우리들에게 아주 낯설지만 익숙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시대를 관통하면서 보여주었던 적극적인 음악인으로서의 모습은 소홀하게 취급되어왔다.
TV에서 보여졌던 그의 모습과 작곡가로서의 모습을 비교한다는 건 방금 말한 아이러니한 표현을 대변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에 다름아닌데, 서글픈 것은 아직도 그의 모습이 기억되는 주된 공간이 아침 TV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고정패널이나 간간이 출연했던 드라마(그가 CF퀸이라는 이영애씨와 열연을 펼쳤다는게 과연 믿어지는가?)에서, 심지어 신사복광고에서 멋들어진 포즈를 취하던 모습이라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의 음악만을 이야기하는 '작곡가 송병준'의 시간을 마련할까 한다.
80년대의 끝자락에서부터 90년대를 정면으로 돌파한 패기만만한 작곡가로서의 모습 - 그래서 오늘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멋진 턱수염을 이야기할 시간은 없을 것이다.

작품의 질과 작업과정, 결과를 논하기전에 송병준이 영화음악을 접하는 태도는 합리적이다. 단순히 합리적이라는 말은 작업결과 그 자체에 대한 태도를 모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신중해야 할 표현이지만, 그의 합리적 태도는 음악을 통해 재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첫 번째, 흥미로운 것은 그가 영화음악을 대하는 개념이다.
송병준은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영화음악을 통해서 찾았다. 어린시절부터 시작된 영화음악가에 대한 집착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또는 아무나 해서도 안되는) 영화음악이라는 - 다소 오만하기까지한 정의를 스스로 내리게 했지만 이것은 영화음악을 영화비즈니스와 연계시켜 학습한 미국에서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오케스트라와의 작업을 최고라고 생각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일견 평범한 작곡가로서의 모습도 연상시키게 되지만 불행한 것은 당시 한국의 영화음악 상황으로, 음악작업을 위해 할당받은 단 3일의 시간이 그에게 준 것은 현실과의 첫 번째 괴리였다. 비즈니스도 아니고 작품도 아닌, 오직 급조만이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무엇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양질의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시간내에 그저 만들어내는 것이었고 이 도구로 컴퓨터가 사용되었는데 시나리오 검토라든가 연주자선정 따위는 이미 물건너간 상태였을지라도 컴퓨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들은 계산보다는 즉흥연주의 개념으로 영상속에서 충분히 그만의 영역을 확보하게 된다.

두 번째, 송병준의 음악은 철저하게 영상을 창조해내는 감독이나 연출자의 감성에 따른다.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고 하는 이들에게는 스탭들간의 간섭없음이야말로 창의적인 사고를 방해하는 주범으로 찍히겠지만 그의 음악은 냉정할정도로 연출자의 지시과 느낌에 기반한다. 이것은 그가 영상과(영화를 포함한) 조우한 매체가 TV라는 사실에 기인하는데 황인뢰 프로듀서와의 작업은 이미 익히 알려진 작곡가 송병준의 이력이기도 하다.
TV에서의 음악이란 순간순간의 포착에 능해야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빠른 해석을 요구하는 순발력있는 작업형태이다. 송병준은 TV라는 열린매체에서의 작업을 통해 영화와 드라마에서 요구되는 호흡법과 영상연출자가 원하는 바에 충실하게 서포트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두가지 이득을 얻게 된다. 그러나 TV를 통한 다수의 작업들은 그의 음악이 다소 단조롭고 깊이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TV에서 쌓은 명성을 기반으로 송병준의 영화음악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놀랍게도 그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작품의 수는 현재까지 20여편을 상회한다.
그의 영화음악 경력이 신승수감독의 89년[빨간 여배우]부터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상당한 다작이라는 것을 어렵지않게 확인할 수 있는데 그중에는 한국영화의 역사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이 많이 발견되어 흥미롭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결혼이야기] [첫사랑]등의 작품들은 작가주의와 한국영화의 본격적인 흥행지향주의라는 전혀 다른 명제에서 출발했으나 나름대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들이다.
논리적인 접근방법을 가지고 있는 박종원감독의 영화에서는 악기선택에서부터 음역대로 분리하는 공을 들였으며, 정돈된 세트시스템과 음악적콘티를 갖고있는 이명세감독과의 작업에서는 영화의 감정을 우선적으로 중시했다. 무엇보다 그의 스타일이 잘 드러난 작품은 1992년에 발표된 김의석감독의 [결혼이야기]와 [미스터맘마]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영화자체에서 중시되었던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느낌과 감독의 스타일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었다. 다소 뻔한 설정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혼행진곡을 재즈풍으로 변주시킨 센스는 전적으로 그의 몫이다.
이후에 발표된 [재즈바 히로시마]라든가 [장미의 나날]등에서는 당시 그의 관심사였던 현대음악적 뉘앙스와 효과음이 주가 되는 긴장감넘치는 사운드를 연출해내어 호평을 받았고 이명세감독과 작업한 또 하나의 영화 [지독한 사랑]은 1997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음악상을 수상하여 송병준의 전성시기를 이루었다.

중견작곡가로, 한국영화음악 역사의 과도기를 지나온 증인으로서 앞으로 그가 짊어져야 할 선배로서의 짐과 가능성은 오히려 더 많아졌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의 영화음악이 개선되어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만 드높이기보다는 불리한 여건을 딛고 그만의 센스와 실천의지로 이루었던 한 작곡가의 작은 몸부림이 시간에 묻혀 흘러가버린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젊고 패기있는, 실력있는 뮤지션을 잃어버리게 된다.
현재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이란 고작 모음집형태로 발표된 2장의 음반과 영화 [투맨]의 사운드트랙앨범이 고작인데 이 사실은 그동안 우리가 한국영화음악의 유산이기도 한 그에 대한 대접이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반증해주는 부끄러운 증거에 다름아니다.
더 늦기전에 그가 우리에게 나지막히 들려주었던 - 시대를 대표했던 젊은 감각과 그만의 작업들을 재평가한다면 한국영화음악의 더나은 발전을 이끌수 있는 작은 원동력이 될 것이다.

- Writer 김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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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 4box@hanmail.net ) boxworld
영화음악가/국내 l 2009/06/2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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