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 그리고 OST-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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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홍대앞'으로 상징되는 바로 그 인상적인 울림은 언더그라운드와 클럽문화의 산실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들이 파격적으로 제시한 개념들은 지리한 토크쇼와 절망적인 립싱크에 질린 대중들을 서서히 포섭해나가기 시작했는데 지금, 되돌아본다면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라는 표현이 딱 맞을 듯 하다.
여기서 한가지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사실은 이들의 울림이 결코 공허하지않다는 사실 - 곧 진지하게 사고할 수 있는 개념의 여지를 남겨주었다는 것이고, 변방의 움직임이라고 생각되던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정립시켜주었다는 값진 결과들과 동의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때문이리라.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장르와 장영규, 백현진이라는 두 인물에 의해서 기획되고 만들어지며, 잊을만하면 뜬금없이 나타나 들려주는 이들의 절규는 언더그라운드의 그것과 궤를 같이 하기 때문에(사실 홍대앞과 별 관계가 없더라도 말이다) 더욱 의미 있다.
이제 그들의 외침은 이제 영화로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결코 영화음악가는 아니지만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느낌을 음악만으로 빚어내는 '어어부 프로젝트' - 지금 이 시간은 이들의 지능적인 두뇌로의 탐험이자 우리가 추구할 재미이다.

영화라는 종합예술은 다양한 장르와 사상을 포함할 수 있다는 특성으로 인해 작가들의 많은 경험이 곧 그 퀄리티를 결정짓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세션맨, 뮤지컬, 무용등의 작업을 하는 장영규와 조각가, 화가, 설치미술가로 알려져있는 백현진의 이력은 장르의 자유분방함에서도 입증되듯 한가지 작업을 하더라도 마치 카멜레온처럼 수많은 모습과 형태를 띈다. 이들이 마치 토해내듯 내탵아 온 메시지들은 평범한 시각에서만 본다면 다분히 반사회적이고 일탈적이며, 부정적인 사고를 은근히 조장하는 악성 바이러스처럼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의지 불능자를 위한 감상용 음악'이라는 코멘트를 붙여놓은 그들의 앨범 <손익분기점>이 단적으로 말해주듯(사지결박 당한 트위스트김의 모습이 꽉 채우고 있는 앨범의 커버이미지는 대단히 유명하다) 그들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면서 할 말은 다하고, 전혀 음악적이지 않은 듯한 소리를 능청스러운 방법으로 음악적인것으로 치환시키며, 앨범의 전곡방송금지라는(당연한 결과겠지만 판매량은 말할 필요도 없다) - 대중과 가까워질래야 가까워질 수 없는 치명적인 족쇄마저도 그 이름도 거룩한 '어어부'의 이름으로(?) 한편의 전위예술로 승화시킨다.
비견한 예로 각종 도구들(비누방울, 이부자리에 우주복까지 등장한다)이 요란하게 등장해 한바탕 법석을 떠는 이들의 '알려진' 공연은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의 예술적인 욕구와 정당하게 볼 권리마저도 때때로 억압당해온 이땅의 관람자들이 가지는 잠재적인 표현욕구와 절묘하게 맞물려 총체적인 충격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다분히 상업적인 색채를 띄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한 이들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어어부 프로젝트'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대중적인 것으로 만들며 연합세력을 구축한다는 일반적인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버린다. 대신 이들은 자신들이 줄곧 추구해온 사회적인 작업들(퍼포먼스, 무용, 뮤지컬 모두 발표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사회적이다)을 대중들에게 서서히 학습시키고 영역을 넓혀나가며 영화에서조차도 같은 목소리를 숨기지 않는다.
이렇듯 '어어부 프로젝트' 행동방식과 사고는 대단히 신화적이지만 모든 값싼 평가를 거부하고 있으며, 대중들과 친화적이지 않지만 언제나 대중적인 음악사고방식을 취한다는 끊임없는 순환고리의 시작과 종결점에 서있다. 이들이 비범한 것은 바로 이런 부분들 때문이다.
곧 언급하게 될 [반칙왕] [나쁜 영화] [링] [강원도의 힘] [복수는 나의 것]등의 다분히 대중적인 작업에서 이들이 거둔 수확은 바로 자업자득에 다름아니며, 그들이 거둔 작은 성공은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그들의 동명앨범이 해내지 못한 것을 말이다.

가면뒤의 진실. 그 뒤에 숨은 어어부 프로젝트의 음악: 영화 [반칙왕]

송강호와 박상면의 박제화된 이미지(엄청난 스타덤에 올라앉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더라도)는 코미디와 드라마라는 장르를 흡수하면서 영화의 방향이 결정되는 듯 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를 독립된 매체이자 하나의 예술로 인정하는 지극히 일반적인 접근방식은 멀어지고 확장된 TV버전, 혹은 스타의 만들어진 이미지에 집중하고 있던 것이 당시 한국영화계의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지운 감독은 한물간 기억속의 스포츠이자 쇼인 프로레슬링을 수면위에 띄워놓고 나약해진 한 인물이 어떤식으로 내면속에 숨은 자아의 모습을 찾아가는지에 집중했다. 이 노련한 시각은 혼재된 장르의 잡종교배마저도 새로운 느낌과 감동으로 거듭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주었고, 정말 뜻밖의(?) 선택인 영화음악을 총괄한 '어어부 프로젝트'는 훌륭하고 상징적인 음악으로 화답했다.
영화 [반칙왕]의 사운드트랙앨범은 '어어부'의 일원인 장영규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작업으로 예전 청년문화의 기수이자 노래한곡 잘못 만들어 표현의 자유자체를 거세당했던 희생양 한대수님의 반가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미 발표되어있던 '사각의 진혼곡'을 제외하면 다른 수록곡들과 영화 [반칙왕]의 연관성은 다소 극히 미약해 보인다. 그 이유는 영화의 스코어로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1분이 못되거나 살짝 넘어가는 짤막한 러닝타임의 브릿지(Bridge)성 연주곡들의 느낌만으로는 앨범의 일관된 컨셉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에 기인한다. (물론 이것은 감상자의 입장에서이다)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을 장식하는 '팡파레'나 '사각의 진혼곡' '선수입장'등의 구체적인 제시곡들은 다소 과장된 느낌으로 다가오는 곡들이지만 [반칙왕]을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정서인 지나간 것들에 대한 추억과 적당한 촌스러움을 더욱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윤활유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어어부표 음악'이라는 것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키치를 더욱 공고히 하기데 충분하다. '어어부'의 음악이 앨범속에서만이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속에서 기능하기 때문에 더욱 그 파급력은 더 큰 것이다.

영화속의 어어부 프로젝트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다: 영화 [휴머니스트]

팝컬럼니스트로 유명한 이무영님은 박상면, 안재모, 강성진이라는 이미지를 거부하고 거의 마음대로 영화 데뷔작인 [휴머니스트]를 완성했다.
사실 영화자체는 혹평을 면치 못했다. 이무영 감독은 '마음대로 만들었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이 무책임한 자괴성 발언인지, 아니면 진정한 평가는 관객들에게 달렸다는 논지를 남긴 것인지 - 영화를 본 사람들만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인 듯 싶다.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감독답게 음악에서만큼은 그 무엇보다도 기괴하고 전위적인 무엇인가를 찾았고 이 영화의 느낌을 대변할 수 있는 곡으로 선택된 것은 '밭가는 돼지' - 곧 '어어부 프로젝트'의 그것으로 이어졌다.
'돼지들의 합창' '미지근한 물' '슈퍼 휴머니즘'등, 제목만으로도 이들의 작업임을 단번에 간파할 수 있는 트랙들은 고유한 '어어부 프로젝트'만의 음악적 색채들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사례이며, 주류음악 특유의 안일함을 철저하게 배격하며 그 자체로 살아움직이는 음악임을 증명하고 있다.
지배권력이 안정된 삶의 형태나 지위를 유지하기위해 줄곧 해왔던 것을 재탕하면서 영욕을 누리듯이 음악성과는 관계없이 주류를 이끌어가는 절망적인 흐름을 이미 거부해온 '어어부'들은 [휴머니스트]의 사운드트랙에서 돼지라는 - 또는 거의 그와 유사한 값싼 이미지를 차용하여 절규를 거듭한다. 사실 필자역시 몇 개의 트랙을 접하면서 이 앨범의 느낌을 희극적인 것, 혹은 단순한 풍자정도로 평가하는 오류를 범할 뻔 했다.
영화음악이라는 것이 오리지널 스코어의 느낌만으로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있다보니 매체에 대한 이해, 내러티브를 중요시하는 영화관점은 다소 경직되거나 관념하된 스코어를 생산해내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휴머니스트]의 음악은 전위를 이해하고 있는 감독과 최전방에서 전위를 실천하고 있던 뮤지션이 만나 한바탕 굿을 벌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의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들은 것은 약간 뒤틀려놓은 2시간짜리 퍼포먼스에 다름아니다.

진실과 아이러니, 그리고... 전위는 나의 것: 영화 [복수는 나의 것]

도대체 박찬욱 감독은 어디까지 가는 것일까? [삼인조]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미 그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찬란한 2.35:1의 화면비를 - 바로 영화자체가 가지는 희열과 감동을 우리에게 안겨주지 않았던가.
그러나 기다림끝에 나온 [복수는 나의 것]은 이전 작에 젖어있던 일반적인 관객들의 고정관념과 기대심리를 완전히 저버렸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을 절망시킨다. 이것은 단순히 '스타들이 줄줄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은...?' 또는 '왜 이 영화는 잔혹한 이미지에 이끌리는가?'의 차원에서 될 문제가 아니다. 박찬욱 감독이 선택한 것은 오버하는 감성과 타성의 난무보다는 영화자체를 사랑하는 열렬광인의 정열과 흥행논리에 이끌려 주제의식마저 희박해지는 근본의 불분명함을 일거에 거부하고자하는 기본적인 몸짓이기 때문이다. 사실 작가라면 당연히 가져야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복수는 나의 것]의 음악을 '어어부 프로젝트'가 담당한 것은 영화의 기획초기부터 계획되었다. 전혀 다른 계급간의 충돌(영화속 인물들은 '복수'로 인해서 만나고 자멸한다. 애초에 이들사이의 인과관계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과 그속에서 벌어지는 아이러니를 음악으로 표현할 요주의 인물(!)로 '어어부'가 선택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섣부른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선택은 매우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며 무엇보다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봤을 때 훌륭한 성과를 획득한다.
[복수는 나의 것]의 티저 예고편에서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던 짤막한 곡은 전혀 '어어부'답지않지만 영화의 모호한 제목과 내용을 종잡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주는데 큰 일조를 했고(여기에는 영화의 카피문구로 쓰였던 '하드보일드'라는 말이 가세하면서 더욱 힘을 발휘하게 된다) 사운드트랙의 첫 번째 트랙을 장식하는 동명타이틀곡은 그 음악만으로 영화의 아이러니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희/비극의 느낌이 공존하는 동명타이틀곡 '복수는 나의 것' - 이곡은 영화속에서 직접 사용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인연으로 모두가 파멸하는 삶의 아이러니를 역설적으로 부르짖고 있어서(보컬부는 노래가 아니라 거의 절규의 수준이다) 음악의 효율적인 기능적 의미를 한층 선명하게 한다.
이런 식으로 영화에서 거의 기능하지 않지만 극의 성격을 더욱 종잡을 수 없게 만드는 곡이 몇 개 더 있는데 열두번째트랙인 '시시한 개'와 같은 트랙이 그렇다. (마치 독일의 전자/테크노그룹 Kraftwerk의 초기사운드같은 패턴과 전위적인 가사로 일관한다)
이전작 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부분으로는 사운드트랙에 실린 모든곡들은 영화의 직접적인 내용전개와 관계가 있다는 것인데 특히 다섯 번째와 일곱 번째 트랙에 위치한 짧은 곡 '황급한 슬로우모션'이나 '무거운 신발'의 음악적센스는 대단히 뛰어나며 영화의 전체적인 느낌을 상징하고 있다. 특히 이 사운드트랙에서는 짤막하게 수록된 연주곡들의 느낌 - 바로 그것은 관객들의 심정을 안전한것에서 불편한 것으로, 진실된 것을 아이러니하게, 평범한 것을 전위적인 것으로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감독이 계획했던바를 그 어떤 요소들보다 충실하게 실천해주고 있는 셈이다.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박찬욱 감독은 [복수는 나의 것]에서의 '어어부'들의 음악을 극찬했다고 하는데 사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애초부터 관객들과의 안정된 약속을 저버린 감독의 의도를 완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음악, 그것을 구사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그들은 간택된 것이었고 이미 '어어부'는 평범한 대중진리를 저버린지 오래된 - 말하자면 일반대중들과 골수매니아들과의 지리멸렬한 복수의 순환고리의 정점에 서있던 인물들이다. 따라서 이 영화의 진정한 복수는 '어어부 프로젝트'의 괴이한 음악으로 인해서 진정으로 완성을 본 셈이다. 물론 그 파급력은 컸다.

- Writer 김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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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4box@hanmail.net) boxworld
영화음악가/국내 l 2009/06/1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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