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 그리고 OST-BOX

글: 조성우(영화음악작곡가)

지금 시중에서 [연애소설] OST란 이름을 달고 팔리는 음반에는 단 한곡의 오리지널스코어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영화 [연애소설]에 흐르는 아름다운 음악을 모두 작곡한 김상헌 음악감독의 곡이 하나도 실리지 않은 [연애소설] OST라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이는 차태현이란 배우의 캐스팅을 조건으로 OST 의 판권을 그 배우의 소속사가 가져 가고, 실제 영화음악을 담당한 작곡가는 자신의 음악을 음반화 할 수 있는 권리조차 갖지 못하게 된 웃지 못할 상황에서 비롯된 일이다.
도대체 OST를 영화음악가가 아니라 배우가 내는 나라도 있단 말인가? 더우기 OST 라고 하는 말을 제 멋대로 사용하는 권리를 누가 그들에게 주었는가?
한국 영화 시장이 발전하고 있다고 하지만, 영화음악에 대한 몰이해와 가요 제작자들의 혼탁한 상술에 놀아나는 일부 우리의 영화 제작 환경은 이제 막 피어나는 오리지널스코어 시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최소한 영화와 영화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 만큼은 이런 사태에 대해 비판적이길 바란다.
요즈음 연애소설 OST 의 이름을 달고 나온 가요 기획 앨범의 성공을 부러워하는 영화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영화음악을 한다는 사실이 한없이 수치스럽게 느껴진다.

아직 한국에 오리지널스코어 시장이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거기엔 '아직'이란 단서가 있다.
최근 2~3년 동안 한국의 영화 오리지널스코어 음악은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추세에 있고, 머지않아 하나의 건전한 음악 시장을 형성할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그 시장은 음악보단 홍보 투자에만 의존해 이미 음악적 다양성을 상실한 한국의 대중음악 시장구조의 개선에도 건전한 물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의 영화음악 작곡가들은 비록 작은 범위라 해도 이미 자국 시장을 넘어 일본/홍콩 등의 해외 무대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우리들의 영화음악 시장은 곧 생겨난다. 많은 재능있는 작곡가들이 영화에 뛰어들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한국의 영화는 이런 음악적 흐름을 더욱 더 보듬어 안고 키워가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영화를 위해 음악을 하는 작곡가들에게 음악 창작의 욕구를 싸그리 부수어 버리는 이런 일이,그것도 영화 제작/투자사의 암묵적 동의하에 벌어지는 이런 일이 도대체 어떻게 이해될 수 있단 말인가?
한 때는 미국 팝송이 한국의 영화음악으로 둔갑하더니, 이제는 영화의 그림만 달고 OST 란 이름만 쓰면 그게 영화음악으로 팔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영화음악이 한 때는 외국 직배사의 팝 마케팅에 희생양이 되더니,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가요시장의 불황으로 영화음악에 눈을 돌리는 가요 제작자들의 상술에까지 겹치기로 신음하고 있는 셈이다.
연애소설 영화조차 보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음악들을 가지고 [연애소설] OST 라고 하며 시장에 내다파는 이런 일이 과연 누굴 위해 하는 장사란 말인가?
김상헌 음악감독의 진짜 [연애소설] OST는 아예 세상에 나올 권리조차 갖지 못할 뻔 했다.
배우의 소속사가 오리지널스코어가 없는 OST 의 판권을 가져가는 웃지못할 상황으로 인해서 말이다. 그것도 모자라, 김상헌 음악감독의 진짜 OST를 원천적으로 발매하지 못하도록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이런 사태에 대해 한 사람의 영화음악가로서 참기 힘든 비애를 느낀다. 음악의 질보단 기획사의 홍보능력에 성패가 좌지우지하는 한국 가요시장의 파행이 이젠 영화음악까지 물들이고 있는 것이다.
스타 캐스팅이라는 모든 영화제작사의 아킬레스건을 이용해 실제 영화음악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OST 판권을 가져다가 기획앨범을 만들어 내는 식의 상술은 그만 멈춰야 한다. 이름만 빌린 가짜 OST의 발매로 인해 [연애소설]의 진짜 OST는 시장에서 이미 엄청난 타격을 입은 셈이다. 영화음악은 음악가가 하는 것이지 배우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뻔한 이치에 무슨 토를 달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지금 당장 진정한 의미의 우리 [연애소설] OST가 시장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슬픈 현실이지만, 스코어가 없는 저 이상한 OST를 대중은 훨씬 더 많이 찾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분명 영화음악과는 무관한 일이다. 제 아무리 많은 대중이 [연애소설] OST란 이름을 달고 있는 기획 음반의 노래를 찾는다고 해서, 영화 안에서 영화와 함께 숨쉬는 김상헌 음악감독의 아름다운 오리지널스코어들을 그 스타들의 노래로 바꿀 수는 없다.
그 노래들이 김상헌 음악감독의 오리지널스코어 음악을 통해 영화를 본 관객들의 마음에 이미 각인되어 버린 영화의 감동을 대신할 수도 없다. 우리는 영화와 영화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을 위해 OST를 만든다.
그 수가 많든 적든... 시장에서 OST 의 성공은 오리지널스코어의 예술적/대중적 가치를 창조함으로써 만들어질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OST란 이름만 달고 있는 가요기획에 의해서는 절대 아니다. 힘겨운 과정을 통해 뒤늦게 세상에 나오는 김상헌 음악감독의 진짜 [연애소설] OST에 축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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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4box@hanmail.net) boxworld
OST-BOX/BOX 컬럼 l 2008/07/2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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