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 그리고 OST-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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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또한 전체 음악을 우리음악으로 작곡하기를 희망하였다. 나는 전통음악어법과 현대음악어법을 병행하여 작업하였으며, 이것은 영화와 관객 그리고 감독과 나 자신을 관통시키고 싶은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1999년에 박광수감독의 [이재수의 난]을 우연히 봤다. 관람후 곧바로 직행한 음반점에서 사운드트랙을 구입했고 앨범 속지에서 읽은 게 바로 이글이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 다시 꺼내어 읽은 이 짧은 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감독과 관객, 다시 말해 작가와 관객사이에 필연적으로 형성되는 창작과 상영이라는 관계를 음악이라는 도구로 좀더 개념적인 것으로, 보다 명확하게 만들고 싶어했던 작가 - 이 목적이 영화음악가라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숙명일지라도 음악감독으로 스스로를 승격시켜가고 있는 작가 원일의 세계를 살펴보는 것은 자못 흥미롭다.
젊은 연륜과 다분히 탈 장르적인(뒤에서 얘기하겠지만 영화음악에만 국한되지 않고 거의 전분야에 걸쳐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음악성향이 그의 영화음악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말자. 적어도 그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작은 혁신을 이루어내며 언제나 모범적인 방법론을 제시해온 노력하고 공부하는 음악인이기 때문이다.

인디밴드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앨범 도시락 특공대에서도, 영화 [반칙왕] [복수는 나의 것]에서 괴이한 음악성을 보여주었던 전위밴드 어어부 프로젝트에서도 우리는 원일이라는 인상적인 이름을 접할 수 있다.
그 이전의 경력은 더 화려하고 이채로운데 90년대초에 국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자신의 음악인생을 열고, 걸출한 타악기주자 겸 피리주자로 자리매김해가는 치열한 과정의 역사를 따져나가다 보면 과연 원일이라는 음악인의 역량과 영역이 어디까지인지를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앨범의 타이틀로 당당하게 자신의 외자이름을 내걸고 발표한 솔로앨범 아수라에서는 이미 한계를 넘어선듯한 장르의 혼합을 담담하게 조율하고 있는 음악감독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주는데 첼로와 피리, 장고 - 태평소와 콘트라베이스의 기묘한 어울림을 목도하는 것은 이제 시스템에 길들여져가는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그리 보기쉬운 장면이 아님을 상기시켜보자.
우리가 앨범으로 접할 수 있는 그의 영화음악이 비록 몇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빈약한 컬렉션일지라도 그것 또한 별 상관이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영화음악가 원일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창조해냈던 음의 미학으로 인해 혁신이라는 주제를 좀더 구체화시킬 수 있었던 다음의 영화들 때문이리라.

하나. 그해의 오월을 이야기하자: 영화 [꽃잎]

장선우 감독이 [너에게 나를 보낸다]의 모더니즘도 아닌 역사의 실체를 다룬 문제의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고자 할 때 많은 이들이 보냈던 것은 칭찬과 격려가 아닌 우려였다.
광주민주항쟁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 [꽃잎]은 그렇게 만들어졌고 비평가와 대중의 엇갈린 찬반양론속에 또 하나의 역사로 남게 되었다.
장선우 감독의 이 작은 혁명은 비록 그 목적을 100% 달성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미흡해 보이지만 결론적으로 봤을 때 많은 이들의 도움과 전폭적인 신뢰관계속에서 영화본질의 의의와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으며 특히 음악을 담당한 원일에게는 [씻김] 이후 장선우 감독과의 두 번째 영화인 동시에 본격적인 극영화음악으로서의 데뷔작이라는 의의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촬영이 시작되기도 전에 동시에 진행된 이 영화의 음악작업은 극의 내러티브를 기계적으로 따라가는 방식을 취하기보다는 5월의 광주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영화음악가에게 직접 느끼도록 했다는 점에서 보다 능동적이며 진보적이다.
응어리진 고통의 역사와 한국인의 정서를 동시에 표현하기 위해 원일은 해금과 태평소같은 우리의 전통악기위에 전자음향의 불균형을 극적으로 대치시키고, 가야금으로 만든 리듬 구조위에(이 구조는 영화의 상징적인 면을 봤을 때 매우 불안정하다) 오보에와 바이올린등의 현악기를 얹어놓는 이상구조로 오히려 그날의 불안감과 비극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원일은 이 작품에서 '80년 5월의 상처가 이 영화와 음악을 통해 조금이라도 위로와 치유의 기능을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다'고 술회하면서 예술의 사회적기능 또한 강조하고 있다.
아마도 원일이 애초에 바랐던 것은, 그리고 감독이 바랐던 것도 우리의 한을 우리의 정서로 치유하자는 의도였음을 생각해 본다면 원일의 우리음악에의 차용이라는 방법론은 매우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둘. 상처입은 역사는 치유될 수 있을 것인가: 영화 [아름다운 시절]

이광모 감독, 은둔하고 있던 예술가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1998년 우리는 듣게 된다.
전쟁에 사그러들고 치유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린 기억속의 한자락을 집요하게 파헤친 이 작품은 역사의 아픈 생채기를 아름답다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감싸 안는다.
그 표현양식은 순간의 찰나와 감각적인 색채에 의존하는 MTV세대의 그것과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출발하였고(사실 비교자체가 넌센스이리라) 연륜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운 영상과 메시지의 합일이라는 총체적 쾌감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이 쾌감은 곧 수렁에 빠진 한국영화를 구원해줄 수 있는 또 하나의 탈출구가 되었고 이 역사의 증거를 영상으로 만들어낸 감독, 그리고 그 영상을 음악으로 서포터하는 원일이라는 작가에게로 다시 한번 U턴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미 영화 [꽃잎]에서 역사고찰이라는 부담을 음악으로 훌륭히 승화시킨 바 있었던 원일은 영화 [아름다운 시절]에서 우리것을 더 노골화시키며 그 비극의 역사에 더 깊게 발을 담근다. 서양과 동양의 음악의 아름다운 조화 - 대금과 피아노의 절묘한 병치는 비극의 역사에 놓인 한민족과 외세의 이미지를 상징하는데 부족함이 없고 그 놀라운 센스는 영화의 슬픔과 비애를 순수하게 음악만으로 이끌어내는데 성공한다.

셋. 100년전의 혁명은 성공한 역사인가: 영화 [이재수의 난]

한국 작가주의영화의 계보를 잇고 있는 박광수 감독은 흔치않은 소재임에 틀림없는 100년전 제주도의 민란, 그리고 그 역사의 중심에 있는 이재수라는 혁명의 인물을 자신의 스크린 역사 한가운데로 끌어왔다.
[칠수와 만수]로 사회의 작은 일탈을 꿈꾸었고 한국영화의 또 다른 중흥기를 책임져야 하는 중년감독으로서의 책임감, 또한 흥행배우라는 미명아래 소비되고 있던 자신의 이미지를 벗어야 하는 두 배우의 경연장이었던 이 작품은 영화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와 여러 가지 악재까지 겹치면서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원일이 담당한 음악은 [꽃잎]과 [아름다운 시절]에 이은 세 번째 역사적 개입이 더 이상 미완의 시도나 무모한 역사고찰이 아닌, 그 자체로 이미 영화로 흡수되어 있음을 드러내주는 단적인 예이다.
신디사이저의 자극적인 소리와 꾸며진 음색에 의존하지 않고 한민족의 소리를 그대로 담은 이 사운드트랙은 거친 역사를 아우르는 작렬하는 타악기와 피리의 음색속에서도 정제된 형식미와 높은 완성도를 동시에 보여준다. 특히 놀라운 것은 영화 속 사건을 중심부에 두고 근처를 배회하는 유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사건의 직접개입에 있어서는 그 행위자체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적극적인 모습이다.
사운드트랙 발표 당시 시장에 유행처럼 난립하던 영화관련 음반의 홍수속에서도 독보적인 완성도를 지닐 수 있었던 것은 원일이 작가주의로 탄생시킨 대쪽같은 음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차라리 그것은 혁명에 가까웠다.
이후에도 원일은 일본의 압도적인 호러물 [링]의 국내 리메이크 작에서 이전의 음악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자신의 음악색깔을 드러내기도 하고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 최근작인 [생활의 발견]에서도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작을 하지 않는 것이 작가 원일의 모습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이 정녕 'Yes'가 아니라면 아마도 대중들은 혁명의 역사를 다룬 몇몇 영화들에서 늘 함께 했던 그의 음악이 지금도 그리울 것이다.
타악기그룹 푸리의 리더의 모습도, 어어부 프로젝트에서의 전위적인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영화음악 매니아들에게 원일이라는 존재감은 또 다른 의미이다.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세작품이 나란히 안겨준 세 번의 대종상(전문 영화음악 작곡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려 세 번의 대종상 음악상을 수상했다)과 같은 가시적인 성과로 인한 부풀려진 기대감이 아니라 혁명의 시간 속에 자신의 음악과 혼을 불어넣어준 작가로서의 모습이 그립다는 뜻이다.
음반시장에서 그의 음악들을 접하는 것도 이제는 점점 힘든 일이 되어가고 있지만 - 놀랍게도 위에서 필자가 언급한 세 음반의 구입은 그리 용이하지 않다 - 하나는 기억하자.
늘 그는 새로운 역사를 음악으로 축복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거라고... 그리고 우리는 그 역사에 기꺼이 동참할 용의가 있다고 말이다.

- Writer 김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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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4box@hanmail.net) boxworld
영화음악가/국내 l 2008/07/24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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