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발전과 영화음악의 발전은 거의 동일한 상승곡선을 그려왔다.
지난 한국영화음악의 발자취를 찾아가보면 의외로 많은 성공작들이 존재해 왔음을 어렵지않게 확인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70년대 한국 영화음악의 르네상스를 예고했던 [별들의 고향]이라든가,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오래간만에 상업적인 성공을 안겨준 [이장호의 외인구단]과 같은 작품은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퀄리티(물론 취향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뒤에도 항상 의문점으로 남았던 것은 상업적 성공과 영화음악의 본질이 올바르게 조합되었냐는 것인데, 이런 어설픈 의문이 가능한 것은 당시까지 우리나라의 영화음악이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으며, 제대로 들려주지도 못했던 스코어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시기에 신병하씨나 김수철씨같은 영화음악의 장인들이 보여준 혁혁한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진정 새로운 세대가 원했던 긴박한 영화음악같은 영화음악을 우리들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접하게 된다.
한 두달전쯤 필자는 자주 방문하는 인터넷 동호회의 중고장터 코너에서 사운드트랙 CD 한장이 가져다 준 파문(?)을 보면서 확실히 달라진 영화음악의 기호와 대중적변화를 느끼며 흐뭇해 할 수 있었다. 중고장터에서 무려 4만원대의 고가에 거래되고 있었던 앨범은 강제규 감독의 실질적인 데뷔작인 [은행나무침대]였는데, 필자는 그 4만원의 가치가 강제규라는 인물이 아닌 이 영화의 오리지널 음악을 작곡한 이동준의 네임밸류에 전적으로 몰리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그만큼 그의 등장은 한국영화음악계에서 충격적인 것이었다.
[구미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침대] [지상만가] [초록물고기] [퇴마록] [유령] [쉬리] [리베라 메]... 이 숨가쁜 리스트에는 한국 최초의 컴퓨터그래픽 도입, 한국형 블록버스터, 최초의 잠수함 액션무비 등 수많은 수식어를 붙일 수 있지만 이런 의미있는 시도를 음악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이동준이라는 이름은 늘 가려져있다. 그만큼 우리는 영화속의 음악에 민감하지 못했고 그에 대한 이해는 늘 부족하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와 그 영상에 함께 어우러지는 음악에 매료되어 실용음악을 전공하게 되었다는 이력이 말해주듯 영화뿐만 아니라 영상과 관련있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왕성한 활동영역을 구축해가고 있다.
그의 체계적인 음악적 시도와 테크닉은 70, 80년대의 영화음악 관련종사자들이 다른 음악활동을 하다가 부업(?)으로 영화음악을 하던 것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그 스스로도 자기작업의 분기점이라고 말하고 있는(본격적으로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 영화 [은행나무침대]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민속악기인 가야금의 고전적 선율과 현대적인 멜로디를 절묘하게 조화시켰는데 이 시도는 단순히 동서양의 만남이라는 구조적인 형식보다는 실제로 영화의 줄거리와 주제의 핵심을 음악으로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후속작인 [지상만가]에서도 음악가를 꿈꾸는 주인공의 작품이 이동준의 스코어가 훌륭한 대변자 역할을 해주고 있다)
또한 그 음악의 근간을 이루는 구성형식에 있어서도 뚜렷한 멜로디를 바탕으로 한 튼튼한 구조위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연주곡위주의 영화음악에 익숙치 않은 감상자들에게도 대단히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런 높은 완성도와 이동준이 발표한 거의 최초의 사운드트랙 앨범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지금도 [은행나무침대]는 영화음악 매니아들의 수집표적 첫 번째 순위에 늘 꼽히고 있다. (안타깝게도 발매사의 도산으로 이 음반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려워졌다)
[은행나무침대]의 성공 이후에 이동준은 최근 [박하사탕]으로 작가주의 영화의 노선을 걷고 있는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인 [초록물고기]의 음악으로 한국영화음악의 미래를 짊어질 신진세력의 선두주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게 된다.
[은행나무침대]에 이어 [초록물고기]의 음악으로 청룡영화제 기술상을 17, 18회 연거푸 수상하는 개가를 올리게 된 것이다. (대종상 영화제에서도 음악상 수상) 안재욱의 여장연기만 기억에 남았던 영화 [찜]에서 그동안 해왔던 SF적인 정서를 버리고 인간적인 멜로디를 선사해 주목을 받았으나 역시 그의 진가는 스케일이 큰 영화에서 빛을 발하는 듯 하다.
당시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찬란한 수식어를 붙이며 개봉되었던 [퇴마록]에서 코러스와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바탕이 된 박진감 넘치는 오리지널 스코어를 선보여 찬사를 받았고, 이동준 스타일을 관객들에게 이해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두장의 앨범으로 발매된 사운드트랙(스코어와 송으로 구분)의 형식마저도 헐리우드의 그것과 유사한데 유감스럽게도 결과는 작품의 참담한 실패와 함께 그의 음악도 '할리우드의 그것을 따라가기만 했다'는 다소 비아냥섞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슬럼프를 단번에 만회하려는 듯 한국영화 최초의 관객 몇백만 시대를 활짝 열어준 [쉬리]의 음악으로 단시간내에 그만의 아성을 쌓는데 성공한다. 물론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많이 팔린 성공한 상품에 속하나 수록된 주제가의 위력(?)과 흥행영화에 사용된 음악이라는 선입견에 눌려 이동준의 스코어가 다소 빛을 바랜 아쉬움이 있다. 80인조로 편성되었다던 오케스트라의 위력도 낯선 이방인이 부른 노래에 눌려버린 것이다.
[유령]과 가장 최근작으로 발표되었던 [리베라 메]도 한국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영화들인데 새로운 실험의 장이니만큼 음악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새로운 실험의 파트너로 선택된 이동준은 그만의 독특한 느낌을 충실하게 음악으로 표현해내어 더욱 확실한 입지를 다졌다.
그러나 일부 영화음악 매니아들에서는 흘러나오는 비판적인 시각 - 이동준이 [은행나무침대]에서 들려주었던 뛰어난 형식미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소 고착화되어 새로운 발전이 없다는 의견들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평가는 그의 근작인 [유령]의 음악을 비롯한 몇몇 작품들의 성향이 한스짐머의 느낌과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것에서 기인하는데, 사실 잠수함을 주제로 한 영화인 [크림슨 타이드]와 비교되던 당시부터 어느정도는 예견되었던 상황이긴 하다.
또한 그가 한스짐머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이해가 되는 부분도 없지는 않지만 이제는 한국영화음악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동준이라는 이름을 생각해본다면 어느정도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음악 매니아들은 이동준이라는 젊은 작곡가에게서 보이는 가능성을 매우 희망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동준은 지속적으로 '이제 한국영화에서도 합리적인 음악시스템을 도입해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보자'라고 말해왔는데 체계화 된 시스템 없이는 작품도, 관객도 없다는 영화의 생리를 이해한다면 그의 발언은 매우 고무적이다.
초기작에서 들려주었던 패기로 그 가능성을 던져주었다면 이제는 중견작곡가로서의 자신의 책임, 잘못된 관행의 반복으로 질적인 향상은 항상 담보해야 했던 영화음악의 현실에 대한 개선, 한국영화음악을 이끌고 나갈 역량과 경영자로서의 능력을 언젠가 발휘해 줄 것이라는 희망 - 우리는 영화음악 작곡가 이동준의 이 가치있는 또 하나의 실험이 성공하길 바라면서 이제는 그 가능성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 Writer 김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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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이동준 이곳에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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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7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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