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 그리고 OST-BOX

글: 김관희

이제 눈만 돌리면 새로운 신작소식이 들려오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어디에선가 만들어지고 있을 - 충무로로 대변되던 특별한 세상, 늘 특별한 일이 있을것 같던 '영화'라는 매체는 이제 매우 가깝게 다가와 있다.
스크린쿼터고 뭐고를 따지기전에(사실 필자는 자국영화 보호장치, 또는 그 배후를 둘러싼 여러가지 말들, 가령 자기 밥그릇 지키기 이런 일들에는 관심이 없다) 한국영화는 단시간내에 폭발적인 신장세를 거듭해왔고, 그것은 양적/질적인 증식과 함께 영화자체를 하나의 독립된 산업으로 인식시키게 되었다. 물론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데, 사실 이것은 영화에 대한 애정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에서는 늘 발생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영화의 산업화에 따른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번 따져보자.
잘 만들어졌다고 영화개봉전부터 은근히 바람을 잡았으나 오락성이 떨어진다는 핑계로 개봉관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지고, 다행히 극장을 잡는다고 해도 예의상 몇번, 또는 며칠정도의 상영일자를 채운 후 바로 간판이 내려가거나 심지어 어떤 작품들은 팝콘을 씹으면서 콜라한잔 하기에는 뭔가가 부족하다는(흥행성, 오락성 뭐 이런것들 아니겠는가) 이유로 아예 다른 영화로 대체되어 버리기도 한다.
아무리 영화에 문외한이라도, 이건 정말 너무하지 않은가?

영화는 어차피 불특정다수를 위한 매체이자 그 거대한 스크린의 크기만큼이나 파급력이 있는 예술적 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 물론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의미로서의 영화도 중요하지만 지금껏 우리가 아는 영화들은 그 역사를 뒤흔들고 바꾼 대가들과 그들의 열정이 녹아있는 혼으로 이끌여왔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어떠한 영화사조의 탄생, 새로운 이론의 발견, 고리타분하게 수십장의 원고로 나열되는 A급 평론가들만의 세상이 아니다. 대가들도 어차피 대중과의 호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영화매체의 생리라면 그 열정을 녹여 우리를 지금까지 진심으로 감동시킨 작품들에 대한 예의, 그리고 새로운 것이 나올거라는 기대 - 이것은 난해한 예술이라기보다는 대중과의 합일을 중요시하고 궁극적으로는 개봉과 상영을 목적으로 하는 영화의 특성이 그렇듯 누구나 기대할만한 가치가 있는 '대중예술'로 간주되는 것이 바로 영화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나도는 영화개봉전의 심리전, 20자로 요약하고 그걸로 평가하는 것을 즐기는 성향 - 영화는 짧은 것을 말할지 몰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중들마저 기대에 못미치는 의미의 나열인 20자의 글에 지나치게 현혹된다면 이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다소 어려울지 몰라도, 현학적인 말장난처럼 보일지 몰라도 영화의 세계에 풍덩 빠진 이상 평론가들의 꼼꼼한 글들은 분명 의미가 있다.
영화를 가볍게 보기 보다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몸짓, 그리고 철저하게 무시된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허술한 영화에도 배울것이 있다는 단순진리를 일깨워주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 일상적인 현상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영화를 사랑하고 아끼며,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나라의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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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에 찬물을 끼얹을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수도)
통권 99권을 거쳐 100권째를 향해가던 영화전문 잡지였던 '키노'가 폐간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아쉽게 세자리수를 못 채우고 전진을 멈춰버린 잡지의 가련한 운명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키노'는 창간호의 편집장이었던, 그리고 지금은 영화평론가로 더욱 유명한 정성일씨의 말을 빌자면 - 철저한 상업적 논리를 대입시켜 승산있고 없음을 판단한 후 그간의 역사를 모두 무시해버린 체 무지막지하게 출입구를 닫아버린, 말하자면 매장에 가까운 것이다.
우리는 흥행으로서의 영화도 좋지만 그것을 꼼꼼하게 분석하고 연구하면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그 해방의 입구를 이 잡지를 통해 찾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유의 즐거움을 다 느껴보기도 전에 닫혀버린 출구앞에서 망연자실한 꼴이 되고 말았다.
소수라고 일컫지만(필자는 그말을 신용할 수 없다) 그 즐거움을 공유해오던 미련한 다수의 자들은 꼼짝없이 갇혀버린 운명앞에서 한숨만 푹푹 쉬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실감해야 했다. 나름대로 체계적인 '키노 살리가'운동은 제대로 진행해 보기도 전에 약육강식이라는 허울좋은 벽으로 포장된 거대한 자본주의의 논리앞에서 힘없이 쓰러져갔다. 작가와 영화의 텍스트를 중요하게 바라보았던 '생각하는 영화잡지 키노'의 운명은 이렇게 처절한 종국을 향해갔던 것이다.
돈되는 영화와 돈안되는 영화는 앞으로 더욱 처절하게 갈림길위에서 심판받을 것이고 잘못된 선택 - 그러니까 후자쪽에 서있는 영화들은 그 존립은 고사하고 탄생마저도 언제나 거세당할 비참한 운명을 맞닥드리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지나친 과장일까?

어떻게 보면 한국의 영화계는 이전보다도 더 위험스러워 보인다. 작가의 토양은 척박해져만 가고, 영화의 시트콤화를 성공적으로 실현한 제작자들의 배는 더욱 부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 걱정스러운 것은 작가주의의 퇴보가 아니라 아예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절망적인 비전 때문이다. 그것은 스크린쿼터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이다.
이제 밥그릇 이야기를 할때가 된 것 같은데, 정말 의식이 있다면 - 진정 근심으로 한국영화를 본다면 배팅하듯이 튕기는 제작자의 관행도 고치고 죽어 바스러져가는 작가들에 대한 예우, 이건 정말 필요한 거 아닌가.
이것을 지키는 것은 전통의 차원이 아니다. 당연히 지켜야 할 자존심 회복의 문제이다.
지금 당장 힘들지는 몰라도 월간 '키노'의 부활은 필요하다. 일어나라. 키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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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4box@hanmail.net) boxworld
OST-BOX/BOX 컬럼 l 2008/07/23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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