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 그리고 OST-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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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매체가 상업적인 마인드에 이끌려가면서 예술이라는 개념과는 조금씩 멀어지는 듯 하지만 아직까지 그것이 감독의 예술이라는데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물론 그것은 필자를 비롯한 몇몇 소수의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라는 것이 단순연출과 행위의 집합으로 이루어지는 소규모적 개념이 아닌 다수의 스탭과 변수가 개입되는 복합적인 성격을 띄기 때문에 그것을 전체적으로 관할하는 감독의 역할은 오히려 더 증대되고, 그 방대함을 효율적으로 소화해내기 위해서는 각 스탭진들과의 유기적인 작업형태가 더욱 절실해지게 된다. 때문에 감독은 - 흔한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과 궁합이 잘맞는 스탭들과의 조우를 소중하게 여기고 작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면 그 체제를 유지하게 되는데 이것은 음악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런 작업형태를 멀리 볼 필요도 없이 헐리우드의 시스템에서 목도하게 된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존 윌리엄스, 팀 버튼과 대니 엘프만,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와 즈비그뉴 프라이즈너, 데이빗 크로넨버그와 하워드 쇼어와의 관계 - 이들의 관계에서는 더 이상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없다. 그들이 영상과 음악으로 만들어낸 수많은 이미지와 개념들은 항상 선구자적인 위치의 바로 그 정점 - 그것에 다름아니며 사실 이들의 관계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에 다름아니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시스템화 되어가는 한국의 영화계에도 이런 관계는 존재한다.

이번에 소개할 작가인 영화음악가 한재권님은 자연스럽게 장 진이라는 두뇌파 감독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이 둘의 작업은 거의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밀도있는 관계형성과 흡입력을 보여준다.
실제로 장 진 감독의 모든영화는 한재권님과의 영화음악을 제외하고는 이야기가 안될 정도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데 여기에는 한국영화의 시스템을 들먹이기전에 '수다'라는 문화창작집단이 배후(?)에 개입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연극이면 연극, 영화면 영화 - 게걸스럽게 현대문화와 미디어를 섭렵하고 시도 때도 없이 토해내듯 작품을 만들어내는 지능적인 문화창작집단인 '수다'는 그 결과에 대한 섣부른 평가를 내리기전에 그 구성원들의 관계부터 먼저 되짚어야 할 것이다.
장 진 감독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신하균, 정재영, 임원희, 류승범 등 알려진 연기자들에서부터 작곡가 한재권님까지 하나의 단단한 결속체를 의미하기도 하는 이 집단은 애초부터 자신들이 하고싶은 것을 마음껏 성취하기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그 형태와 성향, 때로는 대중들에 대한 취향마저도 카멜레온처럼 바꾸며 그 존재를 인식시켜왔다. 이 집단의 대장이기도 한 장 진 감독이 영화와 연극을 왔다갔다하며 재능을 발산하고 그 여파는 대중들의 기호와 취향마저 바꾸며 우리를 잠식해오지만 그들이, 또는 이 집단이 탐미해온 왕성한 문화적인 욕구는 의외로 정확한 규칙과 일관성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사실 이 점에서는 대중들과의 좀 더 진지한 합의나 시간이 필요할 듯 하지만(그래서 장 진 감독의 영화, 혹은 이들의 작업은 대중들사이에서 유독 취향을 많이 타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성을 유지시켜주고 기준이 되는 것은 한재권님의 음악이다.
적어도 한재권님의 음악은 한국영화와 문화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 집단의 목표를 더욱 일사분란하게 만들어주는 기준점이자(이들은 마치 각개전투하듯이 장르의 영역을 넘나들다가도 집단의 목표가 발생하면 약속한듯이 모여든다.
필자는 이런 행동양식을 보면서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님이 참여했던 전위예술집단인 '플럭서스'같은 개념으로 이해했다) 그들의 존재를 더욱 비중있게 만들어주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소개에서는 한재권님의 작품목록부터 먼저 나열하고 주요작품들에 대한 소개를 조심스럽게 해볼까 한다.
작품숫자와 그 질에 대한 냉정한 정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한재권님의 음악은 그 질을 논하기전에 그가 속한 집단의 작은 움직임을 훌륭하게 소화해내고 대중들과의 소통으로 발전하는 진행형의 그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멈출 수 없는 여정을 시작하여 가속이 붙은 자동차? 그렇다면 그 여정을 알기위해서는 운전자의 의도를 알아야 하며 지금부터 이야기할 이 운전자는 그 핸들을 잡고 있는 인물 - 바로 한재권님이다.

새로운 취향의 탄생 혹은 첫 번째 수다: 영화 [간첩 리철진]

영화 [간첩 리철진]은 장 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작품이자 한재권님의 음악이 사운드트랙 앨범으로 발매되어 그 역사를 귀로 확인할 수 있는 의미있는 흔적이다.
남한의 슈퍼유전자(장 진감독식으로 이야기하면 '훔칠만한 가치가 있는')를 빼돌리기위해 투입된 간첩이 택시기사에게 사기를 당해 모든 것을 털린다는 설정부터가 이미 장 진식의 코미디라는 것을 강하게 드러내준다. 장 진식의 유머는 극과 극이어서 그 설정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지만 이 영화는 그 황당함을 인간적인 따뜻한 유머로 포장하고 있고 재치넘치는 연출력과 각본으로 훌륭하게 커버하고 있다. 지금은 영화계의 대스타로 훌쩍 나아간 유오성의 무명시절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몇 곡의 주제가를 제외한 십여곡의 스코어를 가만히 감상해보면 왜 한재권님의 음악이 장진 감독의 영화에 쓰여야만 하는지 몇 가지 사실에서 명백해진다.
영화의 내용전개상 필요한 요소는 임무를 완수해야하는 남파공작원 시점의 진지한 긴장감과 그가 겪게되는 황당한 사건을 암시하는 능청스러운 느낌 두 가지이다. 사운드트랙 앨범의 처음을 장식하는 1분 남짓한 '오프닝'에서 장중하게 펼쳐지는 선율과 '간첩출현' '암살'과 같은 곡만으로는 장르의 구분을 파악하기 힘들지만 앨범의 초/중반부는 확실하게 전자의 요소에 가깝다. 긴장감 넘치는 전자음의 전개와 가끔씩 사용되는 스크래치 노이즈는 영상을 확실하게 장악하면서 압박해온다.
그러나 '리철진의 테마'로 상징되는 선율은 그 긴장감마저도 포용할만큼 뚜렷한 멜로디라인과 갖가지 변주위에 얹혀져있어 휴머니즘이 강조되는 영화의 후반부를 서서히 암시하는데 그 전개방식과 악기의 선택이 매우 탁월하다. 피아노의 선율이 제시되면 어김없이 리철진의 인간적인 모습을 떠올릴 수 있으니 한재권의 음악은 영화음악 본연의 임무인 상징과 구체적인 묘사 두가지면에서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확실한 기승전결과 훌륭한 구성력을 지닌 사운드트랙 [간첩 리철진]은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받는 감이 있으나 그 완성도는 대단히 뛰어나며, 작/편곡은 물론 연주와 제작까지 - 한재권의 원맨시스템이 최초로 대중들에게 각인된 의미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얼빠진 킬러+얼얼한 영화 혹은 두 번째 수다: 영화 [킬러들의 수다]

'수다'라는 이름의 프로덕션답게 이제 장 진은 이 영화를 통해 본격적인 수다에 착수한다.
신하균과 신현준, 거기에 TV드라마를 통해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원빈까지 합세시켜 표면적으로도 벌써 블록버스터의 모양새를 갖추었지만 영화 [킬러들의 수다]는 비대해진 영화의 모양새에 극의 내러티브를 묻어버리는 아둔함이 없다.
다시 말하자면 블록버스터라는 마케팅장치에 휘말려 영화의 색깔을 잃어버리지 않고 오히려 장진식의 유머를 더 확대시켰다는 것인데 이 영화역시 발표직후에 극단적으로 엇갈린 반응과 평가가 무수했다는 것을 보면 감독 특유의 유머는 여전히 녹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성공에 가깝다.
한재권님의 원맨시스템에서 생산된 이 영화의 스코어는 이전작보다 확실히 업그레이되었다. 커진 영화의 스케일을 표현할만한 음악적장치는 오케스트레이션 사운드가 이전작보다 훨씬 비중적으로 커졌다는 점으로도 확인되는데(물론 여기에는 극중에 삽입된 오페라장면도 한몫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운드트랙 초반부에 사용된 전자음향들은 이것이 한재권표 영화음악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3번째 트랙에 삽입된 본 조비의 곡을 제외하면 다소 몽환적이기 까지한 스코어들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킬러들의 공통된 모습들(그래서 필자는 제목에 '얼빠진'이라는 표현을 썼다)을 음악으로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다. 재즈와 탱고리듬을 이용한 정서의 표현은 확실하게 이전작보다 세련된 모양새를 보여주며 간헐적으로 쓰인 디스토션이 걸린 전자기타사운드도 안전한 형식미 위에서 전혀 어색함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운드트랙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뛰어난 형식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자음향으로 구성하는 1인체제에서 나올 수 있는 사운드의 빈약함과(이것은 비교적 스케일이 큰 오페라 장면에서 크게 부각된다) 주제가처럼 사용된 몇몇 곡들의 의도가 불분명하며, 다양한 장르가 혼재되는 과정에서 특정주제들이 모호하게 제시됨으로써 극의 몰입을 다소 방해한다는 것이다.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는 영화 혹은 음악: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

포스트타란티노 세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영화? 또는 젊은 영화광이 신들린듯이(아니면 짜투리필름으로 만들어낸 또다른 신화?) 만들어낸 단편영화의 영웅? 한국영화에 새로운 젊음의 물결을 몰고 온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이런 여러 가지 찬사와 호칭을 동시에 달고 다니는 작품이었다.
물론 이런 표현들은 모두 충분히 일리가 있다. 장선우 감독의 짜투리필름으로 만들었다는 믿지못할(좀 과장하자면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에피소드마저도 이 영화의 신화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데, 필자는 이 영화를 보면서 액션의 진정한 느낌과 열정을 계속 지속하고 싶어하는 진정한 - '열혈영화광'의 진지한 작품으로 봤다.
이 젊은 감독은 충무로에 이렇게 화려하게 입성했고 불과 몇 년후 '피도 눈물도 없는' 액션의 영화를 만들게 된다. 전도연과 이혜영, 당시 떠오르는 신인이었던 류승범과 '수다'의 멤버인 정재영이 가담한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장진감독의 취향이 아니지만 적어도 음악에서만큼은 한재권님의 모든 작품을 집대성해놓았다고 감히 말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역시 이전작과 마찬가지로 가내수공업을 하듯, 모든 스코어의 작곡/편곡/연주를 담당한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는 얼터너티브한 몇곡의 보컬넘버를 제외하고는 한곡한곡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장르적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바로 '표절의 왕'일것이라고 단언했던 류승완 감독의 혼합적 취향처럼 다양한 느낌이 생생히 살아움직이는 영상에는 작가적인 고집보다는 그 혼란의 장르를 소화하거나 영상보다 먼저 이끌어가는 음악적인 센스가 필요하다.
한재권님의 이 작품은 선율에서 느껴지는 장르의 느낌과 샘플링된 무미건조한 사운드의 나열로 인해 다소 단조롭게 생각될 수 있겠지만 종횡무진 살아움직이는 장르의 이탈과 무반복성으로 인해 그 어떤 음악보다 영화속에서 효과적으로 반응한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이 사운드트랙에서는 류승완 감독이 원하는 또 하나의 스타일 - 약간은 쌈마이같은 값싼 느낌, 지나치게 대중적이면서 고급스러움보다는(그래서 이 사운드트랙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지리스닝계열의 음악이 귀한지 모르겠다) 뒷골목의 정서를 떠올릴만한 가벼움이 공존한다. 취향을 파악하고 그 취향에 적합한 작업에 익숙해져온 한재권님의 작업스타일이 빛을 발하는 사운드트랙 - [피도 눈물도 없이]는 바로 그런 영화음악이다.

최근 한재권님이 담당한 사운드트랙은 3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장진사단의 재치넘치는 작품 [묻지마 패밀리]이다. 이 영화는 몇몇 단편영화와 연극의 음악으로 다져진 의도된 상황의 연출에 일가견을 보여주었던 한재권의 능력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유쾌한 작품이며, 그 상황을 완성시키고 함께 즐기는 대중들과의 호흡이 느껴지는 순간 이미 그의 영역은 단순 작곡가의 그것을 넘어있기에 그를 음악감독의 위치로까지 격상시켜야 할지 모른다. '사방에 적' '내 나이키' '교회누나'라는 무의식적인 단어의 나열들만으로는 도저히 이 영화의 느낌을 알 수 없다. 아마도 장 진 감독이, 또는 젊은문화의 생산자로 급부상하는 지능적인 창작집단인 '수다'가 처음부터 노리는 점이 이런 '알 수 없음'인지도 모른다.
관습적인 답습을 단호히 거절하고 새롭고 재치있는 것을 원하는 문화의 포식자인 이들에게서 처음부터 정해진 룰에 맞추어 뭘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무리수가 아닌가 생각되며, 그들의 감정을 음악으로 배후에서 조절하는 한재권님의 음악역시 그러한 수순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필자 스스로에게도 다시 한번 되묻고 싶다.
앞서 언급한대로 그의 영화음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이것을 장진감독 특유의 유머로, 혹은 은근히 <수다>버전으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내 음악이 어떻게될지, 어떻게 튈지 나도 알 수 없수다'라고...

- Writer 김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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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4box@hanmail.net) boxworld
영화음악가/국내 l 2008/07/2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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