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한해를 멋지게 장식한 영화가 한두편이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현재 헐리우드의 강력한 실세로 자리매김한 스티븐소더버그 감독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칸느에서 강력한 수상후보였던 스파이크리마저 침몰시키고(영화잡지 [키노]에서 본 바로는 소더버그의 수상에 격분한 스파이크리 감독이 칸느 시상식장앞에 있는 조형물을 아작냈다는 일화도 있다) 새로운 미국영화의 기수로 칭송받았던 바로 그 문제의 작품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를 대중들에게 선보이면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던 것이다.
20세가 조금 넘은 풋내기 감독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성공인 셈이 되었지만 새로운 영화를 원했던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물론 이런 과도한 기대감 때문에 한동안 소더버그는 연이은 후속작의 실패 등 침체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지금 소개하는 작곡가 클리프마르티네즈는 소더버그 감독의 그 긴 침체의 시간을 거쳐 현재 승승장구를 거듭하기까지 묵묵히 음악으로 서포터를 해주었던 중요스탭이다.
클리프마르티네즈는 영화음악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 그룹 '예스'와 '레드핫칠리페퍼스'의 음악활동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었다는 이력사항만 뺀다면 별로 알려진 것이 없으며(심지어 간단한 신상조차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특별히 '한방'을 터뜨려준 히트작이 없었던 이유로 국내외적으로 지명도도 낮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에서 증명되고 있듯이 영화음악에서도 '특정영화를 위한 공식'이란 억지개념은 없다는 사실이다.
일단 감독을 비롯한 작가의 기본적인 의도와 일치되는 - 적정수준의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하고 영화속에서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개성적인 음악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그런면에서 클리프마르티네즈의 음악은 마땅히 재평가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소더버그의 데뷔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의 사운드트랙은 매우 신중하게 제작된 작업이다. 인더스트리얼 테크노계열의 그것처럼 들리는 2개의 트랙과 사운드트랙 앨범의 첫곡으로 흘러나오는 다소 코믹한 기타연주 넘버를 제외한 나머지 스코어들은 분명한 멜로디를 제시하거나 주제부를 결정하고 작업된 것이 아니며, 들릴듯 말듯한 스트링계열의 악기편성에, 심지어 어떤 곡들은 소음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것은 클리프마르티네즈의 음악이 영화에서 어떤식으로 기능하는지를 본다면(당시 필자는 이런 패턴의 프로그레시브록 음악등에 심취되어 있었는데 이 사조가 영상의 개념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자) 다분히 의도된 것으로, 등장인물들의 이상심리를 설명하고 객관화시키는데 큰 일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고 영화의 모던한 느낌에 정확하게 부응하고 있다. 실례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의 사운드트랙에서 가장 긴 곡인 'You've Got Problem'같은 경우, 정적인 느낌으로 지리하게 진행되지만 영화와 함께 믹스되면 놀라운 효과(만약 명확한 멜로디가 제시될 경우 그것이 오히려 거추장스럽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를 발생시키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작곡가의 음악적인 센스에 기인한다.
다음해인 1990년 크리스찬슐레이터의 출세작 [볼륨을 높여라]의 스코어를 담당한 후(안타깝게도 이 작품에서는 그의 음악을 거의 들을 수 없다) 이전작보다 훨씬 많은 지원을 받으면서 의욕적으로 작업에 임한 스티븐소더버그의 두번째 장편영화 [카프카]의 음악을 맡았다.
영화 [카프카]는 이전작에 비해 커진 스케일과 모호한 영화의 배경에 걸맞게 이국적인 악기들의 편성과 작곡법 등, 여러가지 다양한 시도를 한 작품으로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트랙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스코어들은 영화의 중반부를 넘어설 때 까지도 흑백으로 전개되는 전위적인 영상미를 효과적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는데 비록 영화자체는 흥행을 비롯, 비평에서도 쓴잔을 마셨지만 클리프마르티네즈의 팬들에게는 강한 인상을 주었던 작품이다.
[카프카]이후에 그는 1997년을 제외하면 대부분 1년에 한작품 정도의 작업이라는 공식을 지켜가는데 최근에도 그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비교적 최근인 2000년도에 발표된 소더버그의 [트래픽]에 이어 [나크]등이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그 덕택에 그의 음악을 접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는 점이다.
2003년에 개봉된 마이클더글라스 주연의 [원더랜드]나 2002년 그의 동지 소더버그 감독이 가장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프로젝트였던 - 조지클루니가 출연을 자청했다는(심지어 로비를 했다는 소문도 있다) [솔라리스]의 음악을 맡으면서 그의 사운드트랙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 클리프마르티네즈라는 이름은 이제 점점 익숙한 것으로 바뀌고 있는데,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는 작곡가이니만큼 더 다양한 장르영화에서 접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족>
솔직히 클리프마르티네즈의 음악은 한스짐머나 엔리오모리코네 등 우리가 아는 영화음악계의 주류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바, 그의 음악 역사를 알고 싶은 분들께는 개인적으로 최근작인 [솔라리스]와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두 작품을 필청앨범으로 권한다.
- Writer 김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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