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새로운 신인류의 우상으로 탄생하는 네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초록빛도는 화면속의 이미지는 거의 경의에 가까운 것으로, 0과 1의 조합으로 보이는 순도 100% 디지털의 세계는 비록 영화속 네오의 시선으로 처리되었으나 결국은 그것을 목도하는 관람자들의 몫이다.
그 [매트릭스]의 세계를 음악을 표현해준 작곡가의 음악은 이 영화의 상황과 맞물려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하고 폭풍같은 이미지를 남겼는데 [매트릭스]의 음반이 2종류인것은 - 불행스럽게도 우리가 자주 접할 수 있는 음악으로서의 [매트릭스]는 팝컴필레이션으로 전락한 앨범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음반속에 '레이지어게인스트머신'이나 '마릴린맨슨'과 같은 슈퍼밴드의 곡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꽤나 큰 행운이지만 음의 이미지로서의 영화 [매트릭스]는 어디까지나 스코어를 작곡한 돈데이비스의 공임을 잊지말자.
사진에 소개되고 있는대로 후덕한 인상의 이웃집 아저씨같은 외모를 가진 영화음악 작곡가 돈데이비스는 사실 영화작업보다는 수십편의 드라마음악을 통해 기반을 닦아왔다.
1979년 TV물인 [Hart To Hart]로 본격적인 작곡가의 인생을 걷게 된 돈데이비스는 특징적인 음악성을 전면에 부각시키기보다는 드라마의 극적인 요소에 자신의 음악을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말하자면 정면승부보다는 후방지원에 가까운 형태의 작업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는 오랫동안 회자되면서 비디오니, DVD니등의 여러매체로 재탕될 수 있는 영화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TV물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된다.
하지만 TV판 [스타트렉]이나 국내에서도 많은 고정시청자를 확보하면서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던 [미녀와 야수]등은 그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알리는데 기여했다. 돈데이비스라는 스탭의 포지션을 확고하게 다져가던 시기가 이때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디스코그래피에서 누락되기 일쑤지만 그가 오케스트레이션 작업으로 참여했던 몇몇 TV 시리즈물중에서는 한동안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던 작품들 - [V]시리즈와 제목보다는 헐크라는 인물이 더 기억에 남는 [두얼굴의 사나이]등이 있다. 이 앨범들은 정식앨범발매가 아닌 홍보용 앨범으로만 소개되어있어 접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의 역사를 더듬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어느정도 인기있는 작곡가의 명성을 얻고 난후부터 더욱 바빠진 그는 지금도 한해에 많게는 7~8편정도의 TV음악을 맡고 있는데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영화음악 작업은 작곡가 돈데이비스의 활약상으로만 봤을때 최고의 하일라이트 부분에 해당된다.
약간은 조심스럽게 진행된 그의 영화음악 작업은 드디어 1996년, 코엔형제에 필적할만한 영화광이자 훗날 네오의 그것처럼 영화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할 워쇼스키 형제와의 운명적인 조우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영화 [바운드]의 음악은 단단하게 압축된 나무토막처럼 밀도있는 구성을 지닌 영화의 스토리텔링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융통성있게 구사된다.
돈데이비스는 의식적인 음악의 사용이 오히려 극의 흐름을 부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데 이 영화의 사건과 미묘한 러브스토리(돈세탁의 소용돌이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진행된 레즈비언의 사랑 - 결국 그 돈을 눈치채지 못하게 강탈해야 하는 절박함까지)는 음악으로 인해 설득력을 얻고 어떨때는 주인공들의 아슬아슬한 의사소통이 음악으로 표현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이다.
워쇼스키 형제와의 작업을 '코엔형제와 카터버웰'의 그것과 비교하기에는 아직 무리수가 있어 보이지만 다가오는 Y2K의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예언한 [매트릭스]와 곧 발표될 후속편들의 음악을(2, 3편 모두 담당하고 있다)을 돈데이비스가 맡고 있다.
이렇게 영화 [매트릭스]는 대중들에게 뿐만 아니라 돈데이비스에게 각별한데 스코어앨범을 살펴보면(국내음반매장에 살포된 음반은 스코어는 단 한곡도 없는 팝컴필레이션 음반이다) 30여분정도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영화의 메세지를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다.
영화의 첫장면부터 등장하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 사용된 스코어의 긴박함, 네오가 모피어스의 알약을 먹고 확인하게 되는 - 기계들의 생존을 위해 1회용 건전지와 같은 존재로 전락한 인간들의 실상을 확인하는 중반부의 장면에서 느껴지는 웅장함,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의 말미에 인류의 진정한 구세주로 확인되는 장면에서 울려퍼지는 오케스트레이션과 코러스의 조합은 영화 [매트릭스]의 '그'를 더욱 '그'답게 해주는 조력자이다.
'과장된 평가를 얻은 스코어'이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던게 [매트릭스]의 아이러니이기도 하지만 - 한번 생각해보자. 과장된 웅장함과 기교가 작품을 잠깐 빛나게 할 수는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미덕은 훌륭한 영화에 녹아드는 센스에서 비롯된 영화음악가다운 기교이다.
우리의 사고와 대가들의 음악에서 학습된 고정관념을 버린다면 이제 막 신진의 모습으로 영화음악계를 짚어가는 돈데이비스는 애정어린 시선을 받을 만 하며 무엇보다 기본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앞으로 그가 들려줄 절정의 음악은 정말 기대된다.
대중들이 준비할 것은 기존의 영화음악이라는 - 딱딱하게 학습된 각질을 벗어버리고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는 - 우리와 그에게 동시에 필요한 것도 이런 기본적인 자세일 게다.
- Writer 김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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