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별: Original Soundtrack (1993/1993)
작곡가: Hans Zimmer
발매사: Virgin Records
글쓴이: 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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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01. The House Of The Spirits
[06:31] 02. Clara
[09:34] 03. Coup
[09:50] 04. Pedro And Blanca
[07:24] 05. Clara's Ghost/La Paloma/Closing Title
---------------------------------------------------------------------------------이스터 섬의 석상 '모아이'와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고향으로 알려진 칠레는 국토의 길이만큼이나 기나긴 사연을 품고 있다. 특히 아기레 세르다의 인민정부 수립 이후, 살바도르 아옌데가 합법적으로 탄생시킨 사회주의 정권이 쿠데타로 어이없게 무너져 내렸던 그 반세기는 칠레의 역사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던 시절로 기록된다.
피와 눈물로 얼룩진 칠레의 근대사를 4세대에 걸쳐 한 집안의 내력에 녹여낸 [영혼의 집]은 피노체트 군사 정권에 의해 죽음을 맞은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조카, 이사벨 아옌데가 조국에 바치는 헌사이자 비망록이다. 그러나 소설과 달리 담담한 눈빛으로 그 시절을 바라보는 영화는 서사적인 흐름은 잡았으되, 풍부하고 섬세한 필체로 아옌데가 그려낸 감정의 흐름은 그만 놓쳐 버리고 말았다. 내용은 제대로 번역했지만 그 행간의 리듬감은 제대로 살려내지 못해 지루해진 세계명작전집처럼.
다만 한 가지 위안으로 삼을 만한 것이 있다면 음악마저 같은 흐름을 따르지는 않았다는 것. 서사를 좇아가는 영화의 이면에서 음악은 서사와 서정성을 동시에 불어넣는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야기하는 기쁨과 슬픔의 감정. 그를 간직한 채, 한 세대가 몰락하고 또 한 세대가 시작하는 역사의 격렬한 몸짓을 이토록 아프고도 아름다운 선율에 담아낸 음악가는 다름아닌 한스 짐머다.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한스 짐머의 스코어는 액션과 코미디, 공포,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있다. 그 중에서 블록버스터 급의 액션물과 함께 하나의 군집을 이루는 장르를 꼽는다면 역사물이 아닐까.
사실 [영혼의 집]의 스코어를 작곡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짐머의 음악에서 서사적인 성격을 찾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90년대 이전의 영화에서 오케스트레이션보다 신디사이저의 음감을 선호했던 그는 주로 액션과 드라마틱한 감정에 힘을 싣는데 자신의 스코어를 할애했으니까. 그러나 신디사이저와 오케스트레이션의 조화를 시도했던 [분노의 역류] 이후 짐머는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자신의 스코어에 끌어들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건반 악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영화음악가인만큼 선율 중심으로 펼쳐내는 멜로디는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오케스트라의 장중하고 스펙타클한 사운드 효과는 신디사이저에만 의지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기존의 영화를 통해 이미 서정성을 갖춘 그에게 오케스트라는 서사적인 힘를 실어주었다. 그것은 [영혼의 집]의 스코어가 오케스트레이션을 활용한 짐머의 초기작임에도 비교적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바탕이 된다. 영화에서 부족한 미덕은 서사가 아니라 서정적인 부분(바로 짐머가 자신 있는)에 있었고, 한스 짐머는 자신의 스코어에서 부족했었던 서사성(이 영화의 유일한 미덕인)을 [영혼의 집]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영혼의 집]의 스코어가 영화 자체의 단점이자 장점을 이용해 '운좋은' 상승효과를 얻어낸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영화를 떼어낸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자체로도 [영혼의 집]은 충분히 들어볼 만한 음악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앞을 예지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 클라라. 그녀가 내쉬는 깊은 한숨으로 길어올린 것만 같은 메인 테마 'The House Of The Spirits'는 트루에바 가문에 서려있는 사연을 모두어 10분 남짓한 길이의 오케스트라 선율로 다가선다. 구슬프다 못해 비장하게까지 들리는 현악기의 저주음 위로 떠오르는 클라리넷과 트럼펫, 피아노 솔로. 유유히 흘러가는 강의 수면이 때로는 햇빛을 받아 빛을 발하고, 때로는 그늘에 가려 어두운 색채를 띄는 것처럼 그 멜로디에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들로 가득차 있다.
에스테반을 둘러싼 여인들의 모습을 투영하는 것일까. 누이 페룰라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떠올리게하는 클라리넷의 온화한 선율, 열정적인 딸 블랑카에게 바치는 트럼펫 그리고 아내 클라라가 치던 피아노 소리. 바로 그 선율을 중심으로 닉 글렌 스미스의 피아노 연주로 들려주는 스코어 'Clara'에서 [영혼의 집]을 서성거리는 클라라를 직접 만날 수 있다.
19세기 독일의 고전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멜로디. 슈만이다. 그러고보면 한스 짐머는 때때로 독일 음악가에 대한 애정을 가끔 자신의 스코어에 새겨넣지 않았던가. 모차르트의 자유분방함을 빼닮은 [나인 먼스]도 그랬고, 바그너의 감성을 좇은 [글라디에이터]도 그렇고. 그러나 토속적인 색깔이 강한 [영혼의 집]에서 그것은 현명한 선택은 아닌 것 같다. 아름답긴 하지만 남미의 정서와는 거리감을 주기 때문이다.
스패니쉬 기타음을 사용했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전통적인 음계가 아니라 서양의 음계로 낯설게 그려낸 'Coup'과 함께 이 스코어에서 찾을 수 있는 크다면 큰 결점이 아닐까. 에스테반의 분노를 촉발시키는 어둡고 불편한 타악기 리듬이나 신디사이저의 습한 에코 사이로 블랑카의 신음이 새어나오는 'Pedro And Blanca'에는 앞으로 그에게 맡겨질 [비욘드 랭군]이나 [씬 레드 라인]의 스코어가 미라쥬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영혼의 집]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오케스트라를 만난 한스 짐머의 스코어링 스타일이 한단계 한단계 발전해가는 과정을 가까이서 엿볼 수 있는 앨범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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