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별: Performance (1978/1978)
작곡가: Joseph Beuys, Paik Nam June
발매사: Fluxus
글쓴이: 김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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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2] 01. In memoriam George Maciunas
---------------------------------------------------------------------------------비디오아티스트의 아버지, 사상사, 전위예술가, 그리고 음악가...
얼마전 타계한 백남준의 이름앞에 붙어있는 수많은 수식어를 우리는 잘 알고, 들어왔다.
그를 사랑했던 전세계의 수많은 이들은 느닷없이 닥친 죽음을 애도하고 진정으로 슬퍼한다. 하지만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병상에서 투병을 하며 온전치못한 육신을 이끌면서도 끝까지 예술혼을 불살랐던 노예술가의 마지막 순간은 너무나도 조촐하였다.
무엇보다 남은 이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채워지지 못하는 막연한 상실감이다. 뉴욕타임즈 신문기사의 표현처럼 비디오아트의 선조였던 그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역사를 떠나보낸 것과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색다른 차원의 예술적 자유를 만끽하며 전세계를 누볐다. 그의 지인들이 '한국에서 태어난 지구촌 민주주의 건달'이라고 표현했듯이 어떤 이들보다 사상적 자유를 누려왔던 보기드문 케이스의 작가였다. 죽음은 안타깝지만 그는 늘 그래왔듯이 자유롭게 사고하였고, 자유롭게 우리곁을 떠났다.
우리는 그를 잃고나서야 포털사이트 한 귀퉁이에서 보통때보다 자주 언급되는 백남준 이름 석자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은 많은 오해를 남겨놓고 있다. 이를테면 과천에 설치된 1003개의 모니터 '다다익선'은 전통예술에 입각한 일부 원로들에 의해 한때 철저하게 무시당하였고 철거라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할 뻔한 아찔한 순간의 역사를 갖고 있었으며, '예술은 고등사기에 다름아니다'라는 그의 말은 진실에 대한 고찰도 없이 오해받기 십상이었다. 미디어를 예술에 접목시킨 그의 프론티어적인 발상은 외국에서 수입된 사고의 혁신이 아니라 그가 방랑가적 예술정신으로 치고받으며 스스로 이룩해낸 투쟁과 고뇌의 산물이었지만 정작 새로운 예술행위를 예술로 받아들이지 못한(또는 거부한) 고국에서의 몰이해는 한동안 백남준을 따라다녔다. 게다가 그렇게 보고 싶었다던 경기도에 건립중이었던 '백남준 미술관'은 아직도 답보상태이며, 그의 사망후 상업적가치를 예견한 일부 몰지각한 지식인들 사이에서 돈싸움이라는 치졸한 관계에 얽히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그리고 한가지, 아마도 - 아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친일파의 색깔을 가진 국내최고 거부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어려움없이 풍족한 삶을 살았던 그의 어린시절을, 일본인 여성과 결혼과 결혼하였고 동경대 출신의 학적까지, 백남준의 과거는 알아갈수록 쉽게 비판에 노출될 가능성이 다분하였고 그는 이 오해의 굴레에서 늘 자유롭지 못했던 것같다. 하지만 우리는 독일에서 행위를 통한 예술의 실천, 하이테크를 기반으로 문화의 격전장 미국에서 실천한 예술가적 욕망, 죽기직전까지도 레이저아트의 실현을 꿈꾸던 예술가적 이상주의자이자, 예술로 진검승부를 내려던 치열한 예술가 백남준 그 자체의 모습을 다시금 발견한다. 그는 죽기전까지 예술을 통해 이야기하였고, 예술을 위하여 살았으며, 못다한 예술세계의 실현이 죽음보다 더 두려웠던 - 삶 자체가 드라마틱한 예술인 그 자체였다. 아마도 백남준 그를 넘어설만한 국제적인 명성과 예술적 성취를 가진, 또는 그럴만한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쉽지않을 것이다.
In Memoriam George Maciunas by Beuys, Joseph & Nam June, Paik
예술가 백남준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언급되는 인물이 한두명이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그가 독일에서 예술적 기반을 쌓고 활동할 수 있도록 서포터해준 전위예술가 요셉보이스, 스승으로까지 언급되는 전위음악가 존케이지, 샬롯무어맨등의 존재는 항상 각별하다.
백남준이 독일에서 행했던 전위예술집단 플럭서스(필자는 이 집단에 대한 형언하기 힘든 애정을 갖고있다)에서의 시기는 늘 중요한 지점에 위치하는데 이 그룹의 창시자 조지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에 대한 추억들은 그의 인생속에 큰 하일라이트이다. 조지마키우나스를 기리며 행했던 콘서트 'Piano Duet in Memoriam to George Maciunas'(1978)는 고급예술에 반기를 들고 치열하게 자신의 색깔을 찾기위해 방랑하던 그 시기의 인물에 대한 퍼포먼스이다. 그야말로 전위의 첨단을 걸었던 자유로운 예술가였던 그이기에 70여분이 넘는 소음에 가까운 음향들, 행위들은 난해함을 동시에 수반하지만 행위는 물론 소리와 텍스트 모두를 예술로 치환시킨 괴력의 소유자였던 백남준에게 이 공연은 그 자체로 드라마이자 영화였고 사운드트랙이다. 우리는 이 소리들을 통해 그를 추억할 것이다.
The relationship of Beuys and Paik to Fluxus founder George Maciunas, who died in 1978, was friendly but occasionally tinged with scepticism – as Beuys demonstrated in his revision of Macunias' Fluxus manifesto. This tribute to Macunias was performed in the auditorium of the Kunstakademie, Düsseldorf, the place where Beuys in 1963 first appeared in Fluxus actions, and even played the same grand piano. The concert lasted 74 minutes – Maciunas died aged 47. Paik has been known to title himself the 'world's most famous bad pianist', and Beuys’ was no professional, either. Beuys gave the following account of their joint strategy: 'We don’t execute an action in which the musical instrument isn’t used, but one in which it is used really simply. We don’t agree beforehand what we’re going to do.' Paik had recently become Professor of Video at the Kunstakademie, Düsseldorf, an appointment that took him back to the city where in 1959 his first action music composition – the 'Hommage à John Cage' – was performed in the Galerie 22.
<사족>
그들이 불굴의 예술혼을 실천하던 시절, 이 순간들을 음악이나 영상으로 기록한 매체들은 매우 희귀한 아이템인데 상업성 제로에 가까운 이런 퍼포먼스가 LP로 제작된 바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이 시절의 영웅들 - 존케이지, 요셉보이스나 백남준 등의 흔적이 수록된 - 백남준의 타계이후 이런 아이템들은 고가에 거래되고 있는 실정인데 이 앨범은 2장의 디스크에 나누어 수록/제작되었던 것이며, 현재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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