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든좋든 한스짐머가 영화음악계에 끼친 영향은 적지않은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영화음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발전시켰으며 무엇보다 '한스짐머 사단'으로 불리우는 시스템의 구축을 성공적으로 실현한 인물이다.
마치 조지루카스가 영화를 일찌기 산업으로 인식하고 ILM이라는 시스템을 갖추었듯이 한스짐머는 대량으로 생산되는 영화시장에 필요한 음악소스를 갖추는 작업에 매진한 것이다.
실제로 세계적인 음악시퀀싱 프로그램등에서는 - 예를 들어 Reason의 경우 - 한스짐머 라이브러리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한스짐머가 영화 스코어속에서 주로 사용했던 음악을 소스개념으로 세분화하여 구축해 놓았다.
음악에 처음 입문하거나 영화 사운드트랙 스코어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대가의 음악재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을, 그리고 그 유혹을 넘어서면 비슷비슷한 한스짐머식 스코어의 대량생산을 유도할 수 있는 고도의 전략이 숨어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스짐머는 드림웍스의 음악감독이라는 막강한 지위를 십분 활용하여 제자를 육성, 자신의 음악이 영화속에서 훌륭하게 기능할 수 있도록 체계화된 인재시스템을 개발하였는데 [글라디에이터]에서 공동작업을 했던 리사제럴드나 지금 언급할 마크맨시나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1993년 [언더시즈]의 음악을 담당했던 게리챙과 함께 [스나이퍼]의 음악을 공동으로 작업(한스짐머도 이 작품에 관여하였다)하면서 영화음악계에 입문한 마크맨시나는 1994년, 키아누리브스라는 대형스타를 탄생시킨 [스피드]의 오리지널스코어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스피드]는 영화의 제목대로 스피디한 상황에 걸맞게 웅장하고 빠른 속도감을 촉발시키는 센스넘치는 스코어라는 평을 받으며 그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한가지 단점이라면 [스피드]의 스코어는 자칫 흘려듣게 되면 한스짐머의 느낌을 많이 받을 수 있어서(CD의 백커버에서 한스짐머의 이름을 찾는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의 영향력과 마크맨시나의 오리지널리티 사이에서 확실한 구분을 짓기가 힘든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1994년의 흥행을 책임졌던 작품의 음악답게 다음해인 1995년은 마크맨시나의 역량을 확실하게 대중들에게 드러내고 한껏 높아진 작곡가로서의 위상을 시험받는 시기이기도 했다. 드라마틱 스코어의 패턴보다는 빠른 속도감과 체험적 블럭버스터에 가까운 그의 음악은 [어쌔신] [페어게임] [배드보이즈]등 그해 흥행의 보증수표로 미국이 내놓았던 영화들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으며, 관객은 현란하고 거대한 규모의 영상과 마크맨시나의 음악속에 흠뻑 빠져들었다. (1995년 한해에만 무려 6작품에서 음악을 담당했다)
1996년에는 또 하나의 거대 스케일급 영화 [트위스터]의 오리지널스코어를 담당했는데, 영화의 규모도 규모이지만 토네이도라는 예측불가능한 자연현상을 훌륭한 음악으로 소화해내어 그의 대표작을 언급할 때면 어김없이 거론되는 작품이 되었다. 사실 [스피드]나 [트위스터]는 송트랙으로 꽉 채워진 컴필레이션 사운드트랙만 국내에서 소개되어 마크맨시나의 이름이나 스코어앨범의 존재여부 자체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으나 영화속에서 제대로 기능한 것이 값싼 송트랙들이 아닌, 그의 스코어였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더록]에 이어 니콜라스케이지라는 거물스타를 또 한번 기용한 대형작 [콘에어]와 전작의 성공에 힘입은 후속작 [스피드 2] 역시 마크맨시나의 손을 거쳐갔는데, 이 시점은 그의 음악패턴이 다소 비슷비슷하다는 따가운 지적을 받고(사실 한스짐머 사단에서 나온 음악들이 공통적으로 받고 있는 지적이기도 하다) 1편과 비교해 보았을 때 함량미달이라는 혹평을 받았던 [스피드 2]의 경우에는 제대로 된 스코어앨범이 시장에도 나오지 못하는 악재 - 스코어앨범은 부틀렉으로만 소개되었다 - 가 겹치기도 했다.
그러나 큰 규모의 영화음악을 담당했던 이력으로 인해 의욕적으로 작업된 애니메이션 [타잔]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고, [베이트]나 [트레이닝데이]등의 영화에서 드라마틱한 스코어를 선보이면서 의욕적인 변신에 성공했다. 디즈니사에서 열정을 다해 만든 작품치고는(게다가 음악에 필콜린스까지 가세하였지만) [타잔]의 성공은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이 시기의 작업은 훗날 또 하나의 애니메이션 [브라더베어]의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분명 소중한 가치가 있다.
마크맨시나는 [배드보이즈]의 2편에서 또 한번 스코어를 담당했는데 제작자 제리브룩하이머에게 큰 돈줄이기도 했던 흥행작답게 '영화의 상업적 성공'이라는 목적에 충실하게 부합할 수 있는 전형적인 스코어를 들려주면서 음악센스와 감각이 여전함을 입증시켜 주었다.
10년이 넘는 연륜을 쌓으면서 서서히 자신의 음악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마크맨시나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한스짐머라는 사수의 영향력을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있는 음악을 찾는 일이고, 두번째로는 다소 편식성이 강했던 장르를 이탈해 지금보다는 좀 더 다양한 영화를 체험할 기회를 갖는 것이다.
최근의 영화음악이 작위적인 패턴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도 있는 획일화된 예술상품이라지만 그 모든것을 상쇄시킬 수 있는 중요한 덕목은 무엇보다 그것을 창조하는 작곡가의 장인정신적 마인드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접해왔던 대가들이 고통스러운 산고끝에 만들어낸 음악으로 영화의 한부분을 밝게 비추어 주었듯이, 신진세력들 - 마크맨시나의 경우처럼 새롭게 약진하는 세대들이 할 일은 변화에서 오는 낯설음을 '이유있는 변화'로 대중들에게 알려주는 안내자의 역할이다.
마크맨시나의 역할도 아마 '새로운 영화음악의 창조와 개성적인 스코어 스타일을 확립하는 일' 바로 그것이리라. 그는 그것을 주도할 수 있는 촉망받는 신진세력이 아닌가.
- Writer 김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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