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별: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2000/2000)
작곡가: Clint Mansell, Kronos Quartet
발매사: Nonesuch
글쓴이: SL, 김관희
---------------------------------------------------------------------------------
[01:36] 01. Summer Overture
[00:28] 02. Party
[01:04] 03. Coney Island Dream
[00:36] 04. Party
[00:25] 05. Chocolate Charms
[01:33] 06. Ghost Of Thngs To Come
[00:44] 07. Dreams
[00:37] 08. Tense
[00:42] 09. Dr. Pill
[00:11] 10. High On Life
[01:21] 11. Ghost
[01:44] 12. Crimin' & Dealin'
[01:31] 13. Hope Overture
[00:28] 14. Tense
[00:45] 15. Bialy & Lox Conga
[01:25] 16. Cleaning Apartment
[01:11] 17. Ghost-Falling
[01:02] 18. Dreams
[02:35] 19. Arnold
[02:22] 20. Marion Barfs
[02:14] 21. Supermarket Sweep
[00:32] 22. Dreams
[01:17] 23. Sara Goldfarb Has Left The Building
[00:57] 24. Bugs Got A Devilish Grin Conga
[00:19] 25. Winter Overture
[01:23] 26. Southern Hospitality
[02:26] 27. Fear
[01:04] 28. Full Tense
[04:28] 29. The Beginnig Of The End
[01:50] 30. Ghost Of A Future Lost
[03:55] 31. Meltdown
[03:54] 32. Lux Aeterna
[02:14] 33. Coney Island Low
---------------------------------------------------------------------------------비장하고 장엄한 멜로디를 가진 레퀴엠은 죽은 이를 위한 미사곡을 일컫는다.
꿈을 위한 진혼곡. 죽은 것은 바로 꿈이다. 꿈... 남편을 잃고 아들을 분가시킨 사라에게는 빨간 드레스를 입고 TV에 출연하는 것이, 그녀의 아들 해리는 마리온과 함께 행복한 미래를 꾸미는 것이, 사랑에 목말라했던 마리온에게는 해리의 사랑이, 타이론에게는 큰돈을 벌어 성공하는 것이. 누구나 가지고 있을법한 꿈이지만, 현실에선 아무리 자그마한 꿈이라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꿈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알약 하나로 간편하게 얻을 수 있는 환상은 그만큼 달콤하고 또 유혹적인 것이 아닐까? 핏줄을 따라 퍼진 약 기운이 동공을 확장시키는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도, 노력도 필요하지 않으니까. 마치 비발디의 사계처럼, 계절에 맞추어 그 치명적인 절차를 밟아가는 클린트 만셀의 리듬은 마비된 신경의 반복적인 발작소리처럼 들린다.
앨범 겉면에 새겨진 레이블이 그 음악이 담고 있는 색깔에 대해 조금이나마 암시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마치 버브(Verve)나 판타지(Fantasy)의 트레이드 마크를 달고 있는 수많은 재즈 넘버들처럼, 미니멀한 현대음악의 대가, 필립 글라스나 일련의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이는 로리 앤더슨과 같은 뮤지션들의 앨범 뒤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 노네서치(Nonesuch)의 이름이 이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영화의 음악을 맡고 있는 클린트 만셀보다는, 크로노스쿼넷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내놓은 수많은 앨범들이 바로 이 노네서치의 레이블을 달고 나왔으니 말이다. 1973년에 결성된 크로노스 쿼넷은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그리고 첼로로 구성된 전형적인 현악 4중주단이었지만, 그 시작부터 클래식 레파토리는 연주 목록에서 제외시켰고, 그대신 레드 제플린이나 오네트 콜멘, 델로니오스 몽크의 음악에서 아프리칸 음악에 이르기까지 락과 재즈 그리고 제3세계의 음악들을 파격적인 그들만의 음감으로 재해석하며, 현재에도 일년에 100여 차례의 콘서트를 열면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룹이다.
거기에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파이]에 이어 두 번째로 그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클린트 만셀의 스코어는 크로노스 쿼텟의 신경질적인 연주와 아로노프스키의 숨막히는 화면을 잇는 매개체로서 영화 속에 단단히 그 자리를 잡고 있다. 멜로디보다는 사람을 불안케하는 리듬감이 강조된 그 건조한 스코어는 현실이 아닌 꿈에서 출발하여 환상으로 가는 경로에서는 마약만큼이나 자극적인 흥분이 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돌아오는(혹은 떨어지는?) 곳이 꿈이 아니라 현실임을 보여줄 때에는 두 배나 더 처참하고 끔찍한 충격이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환타지와 오네트 콜멘의 프리 재즈 사이를 이어주던 [네이키드 런치]의 하워드 쇼어처럼, 만셀의 스코어는 현실 앞에 무기력한 네 사람의 자기고백을 우울하고 공포스러운 '겨울'의 음악에 담아낸다.
뭔가에 중독된다는 것은 그처럼 치명적인 것일까? [레퀴엠]에는 봄이 없다. 거기에는 이미 중독된 여름과 황폐해져만 가는 가을 그리고 몸서리치는 겨울만이 있을 뿐이다.
나를 제외한, 설사 나를 포함한다 하더라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서로의 생각과 자유로운 사고처럼 - 우리는 음악에서도 혼란속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음악이 있고 그것을 글로벌한 것으로 묶어버린다해도 '음악적인 것들'은 늘 장르에 종속적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느장르의 무슨음악' 이런식으로 이해하게 된다. 사실 그것이 음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면 그 긍정적인 면까지 부정하고싶은 마음은 없지만 때때로 그 획일성은 무언가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방해를 할 뿐이다.
욕먹든 말든 수많은 밴드들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그와 반대의 경우 - 날카로운 기타의 디스토션 사운드는 그보다 더 신경질적으로 뜯고 할퀴는 바이얼린과 첼로의 선율로 상이한 정서를 표현해내는 - 도 수없이 보아왔다. 그것은 도대체 서로에 대한 견제인가, 아니면 탈장르의 선구적인 시도인가? 하지만 우리가 알고있지못한 다양한 음악의 장르들처럼 일찌감치 그것을 넘어서서 실천해온 작가들의 존재가 있기에 그것은 불가능이 아니라 늘 우리주변에서 '살아숨쉬고 있던 음악'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일찌감치 장르를 넘어선 음악세계를 만들어오던 현악 4중주단의 혁명정신과 작곡가, 그리고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을 영상으로 구현해낸 감독이 만난 영화가 바로 [레퀴엠]이다. 졸리는 아기에게 자장가가 달콤하듯 곧 죽을자에게 레퀴엠은 끔찍한 악몽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정말로 쿨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살아숨쉬는 음악을 만드는 이들의 죽음에 대한 찬가 [레퀴엠] - 흥미롭지 않은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